기계문명이 쳐들어 올 때
집안 청소부터 다양한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신해 왔다. 이제는 예술의 영역에도 기계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인간의 실수를 보완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창의성'이라는 인간 최후의 영토에 까지 침범하려는 기세다.
클래식 음악의 악보를 보면 다양한 음표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같은 이탈리아어 지시어도 있다. 메트로놈도 등장해 연주자들이 박자를 정확히 헤아리며 연주하는데 도움을 준 기계다. 기보법도 역사적으로 보면 지속적으로 발달해왔지만 같은 악보를 두고 정확히 똑같이 연주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베를린 필이라도 베토벤 5번을 어제와 오늘 동일한 길이와 강약으로 연주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단원들도 지휘자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 빠르기 지시어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지휘자의 재량이 상당 부분 가미된다.
아다지오나 프레스토 같은 빠르기 지시어는 평소 사람이 걸을 때의 일반적인 심박수를 기준으로 이탈리아인이 정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빠르다는 느낌이 주관적이듯이 일반적인 템포에 대한 느낌은 지휘자나 음악가들이 기계적으로 같을 수는 없습니다.
- <당신을 위한 클래식>,전영범 저,P.242
아무리 완벽을 기한다 해도 인간은 실수투성이다. 실수 또한 새로운 발견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그 유명한 3M의 포스트잇은 실수한 접착 기술이 만들어낸 선물이다. <백조의 호수>, <카르멘> 같은 명작들도 초연 당시에는 이런 거대한 실수를 공연이라고 무대에 올리다니 대체 작곡가가 누구냐고 돈을 내고 보기 아까운 공연이라는 성토를 받았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또한 그런 비아냥을 견디며 입체파의 상징이 되었다.
AI 소설가가 등장하고 AI 지휘자가 등장하는 시대다. AI가 그린 그림이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등장하는 경우도 외신을 타고 들어온다. 그렇다고 예술을 기계에게 맡기면 실수를 줄일 수 있고 균일한 작품을 선 보일지 몰라도 그걸 우리가 진정한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술이라고 부르면 모를까.
AI가 만든 작품이 설사 반 고흐 작품의 경매가를 넘어선다 해도 반 고흐의 삶을 살며 귀를 자르고 예술정신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의 심장을 가진 예술은 어쩌면 실수조차도 넉넉히 품은 개념이 아닐까. 예술은 아마도 기계에 자리를 내어줄 인간 최후의 영역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