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름이나 기업체명을 정하는 일은 그 이미지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중요도에 비례에 그만한 공을 들이지 않기도 하고 공을 들였다고 반드시 좋은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브랜드에 부합하는 콘텐츠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체 오너분들과 만나 기업 이름을 정한 내력을 들었다. 한 분은 자신의 딸 이름을 쓰는데 그 이유는 늦둥이 딸이 태어난 이후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에 그 기운을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여성기업인 한 분은 '경분'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울면서 바꿔달라며 졸랐던 일화도 들려준다. 그분의 어머니는 서울 '경'자에 나눌 '분'자, 서울을 반으로 나눠서 차지할 정도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말에 소녀는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그 이름대로 소녀는 탄탄한 중견기업의 오너로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려는 기세로 사업을 일궈가고 있었다.
회화 작품 중에 가장 많은 이름은 '무제'가 아닐까 한다. 의미를 설명하기 어려워서 포기하기도 하고 정확히 규정했을 때의 해석의 제한점을 넘어서려는 작가의 의도도 있을 수 있다. 추상화의 세계는 대개 해석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보는 감상하는 이마다 제각각으로 해석할 공간을 넓게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클래식 음악의 경우도 표제음악과 절대음악 논쟁처럼 선율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이런저런 논란을 넘어서면 결국 "예술은 의미부여의 마술"이라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다. 김춘수 시인이 그랬듯 감상자가 저마다의 느낌으로 이름을 불어줄 때 그 꽃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활짝 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누군가 알아봐 주고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사회 속에서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에 값하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준비한다면 내면의 빛으로 이름이 더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한 출판사의 작명 스토리도 재미있다. 한 출판사 설립자가 뭔가 폼나는 이름으로 출판사 이름을 지으려고 몇 날 며칠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자 딱하게 생각한 아내가 한마디 했다. "이름을 너무 특이하게 지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지어요"라고. 그러자 그 사장은 손뼉을 치고 바로 이거다 하며 이름을 지었는데 그 이름이 '평범사'였다. 평범한 이름으로 비범하게 커나가는 주변의 무수한 풀꽃을 보며 아침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