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예술가들

별난 사랑 위대한 작품

by 호림

성 소수자(퀴어)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품의 아우라에 가려 대중들이 모른 채로 지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상처 받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권 감각이 무디었던 시대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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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클래식의 심장과도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교수라는 직함을 가졌을 때 여성 제자의 구애에 못 이겨 결혼을 했지만 자살 소동 끝에 이혼했고, 동성애자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그를 괴롭히는 시대를 오선지와 씨름하면서 살았습니다. 후원자를 얻어 교수직을 버리며 작곡에 전념하던 중 후원이 중지되자 그가 천여통의 편지로 소식을 물었지만 후원자 폰 메크 부인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메크 부인의 건강이나 재무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답장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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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최고의 천재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입니다. 그를 예술가로만으로 칭하기에는 부적절할 정도입니다. 해부학, 물리학, 지리학... 그가 손대지 않은 영역도 별로 없었고 그 모두가 당대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요리에도 일가를 이루었다고 하니 한 사람의 성취의 한계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2017년 그의 작품 <살바토리 문디>가 뉴욕 크리스트 경매에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억 5030만 달러(약 5,014억 원)에 거래되었다는 건 아무리 예술성이 뛰어나더라도 그 천재성의 프리미엄이 작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 빈치는 24세 때 남색 행위로 고소를 당해 당시의 엄격한 관행으로 사형에 처해질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 빈치는 메디치 가문에서 그 재능을 아까워해 구제함으로써 극적으로 삶을 이어갑니다. 이렇게 사생아로 태어나 양자로 입양되었던 파란 많았던 다 빈치의 초년 인생의 위기가 극복되었기에 우리가 지금 루브르에 걸린 모나리자의 미소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 빈치는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 탓인지 후손에 대한 관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후일 살라이라는 양아들을 두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부자의 정은 깊지 못한 데서 나아가 서로 험담을 하는 사이가 되어 천재를 품을 따뜻한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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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놀라움을 안긴 천재의 삶이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 행복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삶의 고통을 엄청난 수준의 몰입으로 극복했기에 우리가 오늘 걸작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 정체성과 창의성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유독 미술계에는 동성애자였던 작가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마르셀 뒤상, 데이빗 호크니,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이 이런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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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포르노 배우 출신 정치인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치치올리나 의원과 부부의 연을 맺은 화가가 있었습니다. 제프 쿤스는 이성애자이지만 치이올리나와의 요란한 사랑으로 동성애자 못지않은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부부의 성관계 장면을 묘사한 그림까지 화제가 되었고 이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폄하하는 이도 있었지만, 작품의 가격 측면에서 제프 쿤스는 성공한 미술가입니다.


성 정체성의 문제를 금기시하고 온전한 이성애자만을 정상으로 취급하는 시대를 지나 퀴어(성 소수자) 예술가도 편견 없이 그 작품으로만 이해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시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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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쾌청한 가을 속으로 자전거 도로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갈증을 이기려 잠시 머문 작은 카페에서 다르게 사는 젊은 부부를 보았습니다. 도시에서 대기업 근무를 하기도 했던 커플은 전원에서 또래와는 다른 꿈을 꾸면서 해먹 위에서 여유 있게 에스프레소 한 잔에 찐한 행복의 미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성부부였지만 삶의 방식은 소수자였습니다. 그렇지만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물으며 이들을 보는 내 진부한 생각의 시선이 이들에게 불안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가끔 혼용되는 한글 단어입니다. 다른 것은 결코 틀린 것은 아니겠지요. 그것이 성적 정체성의 문제든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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