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의 다락방

표절의 유혹을 견디는 예술

by 호림

이탈리아 음악가로는 국민작곡가로 불리는 베르디의 이름이 우선 떠오른다. 가극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알려진 로시니도 있다. 로시니는 대책 없는 낭만파에 도대체 작곡 의뢰자의 요청에 기일을 잘 맞추지 못하는 성향이라 벼락치기 작곡가로 알려졌었다. 가극 <도둑까치> 서곡을 의뢰받고는 연주일이 다가오는데 감감무소식이라 급기야는 대리인과 의뢰자가 그를 다락방에 가두고 당장 내일까지 곡을 쓰라고 할 정도였다.


다락방에서 필기구와 오선지를 마주한 로시니는 순식간에 악상을 떠올리고 초속성으로 믿기기 않을 정도의 속도로 작업해 나갔다. 인쇄가 급해서 로시니가 다락방에서 창 밖으로 던져준 악보를 대리인이 한 장씩 인쇄하는 방식으로 코앞에 닥친 납기일을 맞춰서 공연을 했고 곡도 대성공을 거뒀다.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하는 사람은 특정 기한 전에 척척해내는 경우라면 다행이겠지만 의뢰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닥쳐야 긴장감을 느끼고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로시니는 기벽 중의 하나가 자신의 마감에 쫓겨 허둥대며 조르는 의뢰인과 매니저의 모습에 묘한 쾌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하니 괴짜임이 분명하다.


그런 로시니는 빈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작곡가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18세 때 희가극 <라캄비알레 디 마트리모니오>(번역하자면, "약혼 어음")는 베네치아에서 상연으로 로시니의 이름은 알려졌고. 최대 인기작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1816년 2월 20일에 로마에서 상연됐고, 같은 해 12월 4일에는 「오텔로」가 나폴리에서 상연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로시니의 이름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고 빈에 까지 알려졌다.

베토벤이 46세에 제9번 합창교향곡 작곡에 착수하려고 할 무렵에는 베토벤의 명성도 클래식의 도시 빈 사람들이 열광하는 로시니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베토벤의 연주회가 로시니의 가극에 압도되었다고 하면 현재의 기준으로는 상상이 안 가는 일이지만, 당시 로시니의 유명세가 짐작이 간다.


많은 연구자들이 눈에 보이는 실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유명대학 연구진이 해외 저널에 투고한 논문이 표절로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표절은 창작자로서 남의 영혼을 갉아먹는 범죄행위다. 아마도 기존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나 단박에 실력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자신 안의 악마가 손짓하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로시니가 다락방에 감금되어 벼락치기로 작곡한 <도둑까지>는 사실 자신의 전작에서 이런저런 악상을 빌려온 '도둑' 작곡이라는 설도 있다. 표절의 기준이 되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지만 과거 클래식 작곡가들도 유사한 선율을 변형해 다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든의 100여 개의 교향곡이나 멘델스존의 수백 곡은 반드시 각각이 독창성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곡이라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이 숫자는 적을 수도 있지만 각각이 개척해온 다른 경지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클래식 음악에 대한 평가도 그 양적, 질적 기준에 다른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몇년 전엔 이우환 화백의 미심쩍은 그림 유통에 대한 위작 시비가 있어서 경찰이 조사하기도 했고 예술계에는 원작과 모작, 나아가 자기 표절에 대한 시비가 많다. 연구나 창작의 윤리는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속일 수는 있어도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마음에 두는 일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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