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존재 확인

덧칠을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예술가의 길

by 호림

작업실에는 유화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그는 땀을 흘리며 작업 중이었다. 가까이 보니 캔버스 위에 덧칠을 해서 마땅치 않은 그림을 지우고 있었다.


고시나 입사를 준비하거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이들의 목표는 대부분 명확하다. 작업실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달려가는 예술가들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명예나 돈과 같은 보상이 어떤 크기로 어떤 시기에 따라올지 커다란 보상은 영원히 자신과 거리가 있는 것인지 불투명한 길을 가는 이들이 예술가가 아닐까. 우리가 예술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대단한 명성과 작품성에 대한 것일 경우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그 불확실성을 견딘 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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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존재의 확인에 대해 다소 난해한 듯한 언어로 얘기하다가 결국 타인과의 교감에 방점을 찍은 바 있다. 키에르케고르 역시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의 맥락과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신과의 교감을 존재의 최고 가치로 삼았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유화 한 점이나 오선지에 기록한 선율, 글로 타인들과의 교감하는 것에서 존재를 확인한다. 젊음의 한 챕터, 때로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고도 세상의 인색한 평가 속에 살기도 했다. 과거를 돌아보면 죽기 전에 빛을 보지 못한 작품으로 궁핍의 세월을 보내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슈베르트, 반 고흐, 이중섭......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는 이도 있었다. 월든 호숫가의 소로, 깊은 산중 오두막의 법정스님처럼. 소로나 법정은 빛나는 언어로 자신이 걸어간 삶의 의미를 기록해 대중들과 교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존재의 향기가 오래 남아있다. 스스로의 삶을 예술로 만든 이들의 철저함에 대해선 늘 존경이란 답례를 보내게 된다.


끝도 없어 보이는 긴 예술로의 여정에 나서서 캔버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다듬던 작가들은 확신에 차서 붓을 드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작품에 자신의 진정성이 묻어나지 않는다고 덧칠을 해 그 그림을 아예 없애고 같은 캔버스 위에 새롭게 작품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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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도 우리는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자신만의 방식이 항상 옳지 않을 수도 대중들의 환호에서 비켜나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술로 가는 길에

닥친 고난을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선 이들에게는 언젠가 보상이 따를 것이다. 화가 정복수는 이런 자기 확신으로 빛이 보이지 않았던 험로를 헤쳐오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의 2019년 이중섭 미술상 수상 소감이 울림을 주었다.


지금껏 한 번도 다른 직업을 지녀본 적이 없다. 가끔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계속하다간 미쳐 죽을 것 같았다. 그림을 위해 다른 일을 하는 걸 못 견디겠더라. 차라리 거지로 사는 게 낫지. 그래서 진짜 반 거지로 살았다.

......

누군가는 자기가 대학교수고 유명하니 나를 불쌍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림에만 신경을 쏟지 못하는 그들이 불쌍하다. 나는 인정받기 위해 그리지 않는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그릴 것이다.

- <당신을 위한 클래식>, 전영범,. P.7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잘못된 방향으로 힘차게 걷느니 절뚝거리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느릿느릿 가는 것이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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