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바 전 미국 대동령은 달변가로 알려진 정치인이었다. 그는 어릴 때 <국부론>이나 <월든> 같은 책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해가 잘 안 되어도 뭔가를 꾸준히 읽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것들이 자신의 정치생활의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필즈상에 빛나는 허준이 교수가 어릴 적 '수포자' 였다는 과장된 보도도 있지만, 실제로는 수학도 늘 중간 이상의 성적은 되었고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정도였다고 한다. 반 클라이번으로 신동 피아니스트로 떠오른 임윤찬의 신들인 손놀림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창조적인 영감은 단박에 나타나 일필휘지로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뉴턴이 중력의 원리를 무수히 고민한 나날들이 없었다면 그저 무심히 떨어지는 사과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당장 써먹는 지식이라기보다 그저 고전이라기에 꾸역꾸역 읽어서 구겨 넣듯이 한 지식이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의 교양과 품격은 이런 지루한 시간을 견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골프장에서 머리를 들지 않고 무수히 연습볼을 때려내야만 필드에서 굿샷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 수 있듯이.
사실 일정한 공식의 암기나 절대량의 지식 습득은 크고 작은 따분한 여정을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 살인적인 학습량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얘기하고 창의성을 고양시키는 교육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단박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일정한 지식의 침전물이 뇌에 쌓이고 그것이 응용의 경지에 이르려면 상당한 축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퀀텀 점프의 순간은 이런 지루한 시간에 대한 보상일 수 있다. 피겨스타 김연아도 실전에서 우아한 점프를 성공한 횟수보다 연습에서 빙판에서 넘어진 횟수가 수천수만 배 많다는 것은 상식이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하얀 백지를 보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을 가끔 본다. 대개는 요령보다 자신이 써야 할 글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으라고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들은 과거의 유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기에. 자신의 뇌에 축적된 무수한 독서와 경험이 종횡으로 연결되는 시점에 펜을 든다면 아마 그 펜은 아무도 모르는 신천지로 달려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