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소리와의 경계선이다. 적요가 깔리고 나면 그전에 들은 것들이 듣는 이의 마음속에 정리할 여유가 생긴다. 의미심장한 침묵은 어떤 소리보다 강하게 우리를 움직인다.
가족들의 다정한 일상의 언어가 문득 사라졌을 때,
사랑스러운 아이가 재잘거림을 멈추고 침묵에 잠길 때
불안이 엄습할 때도 있다. 침묵은 어떤 강력한 경고보다 강한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어릴 때 작은 사고를 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호통을 치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니가 쉬쉬하면서 눈치를 보시더니 잘 타일러 그런 일이 두 번 다시없도록 하라는 엄영이 있었다고 살그머니 전했을 때 그 어떤 훈계보다 아버지의 무언은 강한 훈계였다. 좋은 리더와 작곡가는 침묵과 소리의 시기를 알고 잘 배치하는 사람이 아닐까.
음악에서도 침묵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음악의 본질은 침묵과 소음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이기에. 백남준과도 교유한 전위 예술가 존 케이지는 오선지 위에 아무것도 그려 넣지 않은 곡을 작곡했다. 작곡이랄 것도 없을 정도다. 그의 <4분 33초>라는 곡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4분 33초 동안 있다가 내려오는 곡이다. 초연 당시에는 웅성거리며 퇴장하는 관객들의 항의가 있었다. 존 케이지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실 완벽한 침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악장에서는 밖에서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2악장에서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고
3악장에서는 관객들이 대화를 하거나 밖으로 나가며 여러 가지 흥미로운 소리를 냈지요.
- <당신을 위한 클래식> 전영범 지음, P.56
침묵의 메시지처럼 존 케이지가 만든 하얀 오선지는 어떤 음악보다 강한 울림을 주었다. 휴가철엔 인파가 드문 갤러리를 찾고 조용한 산사를 찾는 것도 침묵의 언어와 친해지는 방법이다. 요즘 유행하는 '물멍'이나 '불멍'도 제격일 수 있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면 온갖 소음에 시달린 내면에 선물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