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무게

by 호림

최근 작곡가나 영화평론가가

표절이나 부정확한 인용으로

신뢰를 잃고 무대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고갈되어도 계속 이리저리 변용해서

공산품 찍어내듯 만드는 것이 예술작품일까.


인기를 먹고 살기보다

영원히 남을 작품을 고민하는

정신이 사라진다면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직업인 정도로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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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해도

그 새로움을 위해

몸부림치는 예술가의 정신을

존중하기에

대중들은 그 고단한 과정에

경의를 표하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에게도 창작의 샘이 바짝 말라서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과거에 문인들은 절필 선언을 하고

두문불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떤 화가는 자신이 뭔가 새로움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

붓을 놓고 마냥 기다리는데

창작의 신이 언젠가는 자신 안에

들어올 것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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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신은 매너리즘마저도 붙들고

꾸준히 작업하는 이에게 올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라고

세상에 내놓으면

짝퉁 예술가들이 민첩하게

자신의 영혼이 담긴

작품을 베낄 수 있는 시대다.


코코 샤넬도

자신의 창작물이 도용되는데 대해

불편함이 있었지만

프레타 포르테 시장의 성숙을 예견하고

라이선스를 받는 족으로

시장 변화를 읽었다.


화랑계의 큰손 가고시안의 안목과

매니지먼트가 없었다면

'검은 피카소' 바스키야는

피카소를 표절한

무영 화가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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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이 희미해지고

정보가 빛의 속도로 흐르는 시대에

모방과 창작의 경계는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대담하게 훔치는 경우를

창작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피카소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예술가라면 성실히 답해야 한다.

누군가의 땀에

결코 공짜로 올라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때로 대중의 눈과 귀는

천재의 그것보다 날카로울 수가 있다.

집단지성의 이름으로.



평범한 사람은 모방하고 천재는 훔친다.

-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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