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라는 직업의 애환을 얘기하는 친구는 늘 판결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애먼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는지 깊이 회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고백한다. 인간의 지식은 언제나 불완전하기에 미묘한 진실이 겹겹이 쌓인 가림막을 벗기기 전에는 잘 보이기 않는 경우도 많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을 살펴보자.
자유로운 영혼의 곡마단 소녀가 입양이 되어 학교에 갔다. 소녀는 어려서부터 곡마단에서 말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말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말을 정의해보라는 선생님의 질문을 받고 혀가 얼어붙었다. 소녀에게는 말이 늘 마주 보고 함께 뒹굴던 그냥 말이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곡마단 소녀를 제압해 버린다.
"네 발을 가지고 있고 초식성입니다. 이빨이 마흔 개인데 어금니가 스물네 개, 송곳니가 네 개 그리고 앞니가 열두 개입니다. 봄이 되면 털갈이를 하고 말발굽은 딱딱하지만 쇠로 편자를 해 달아야 해요. 말의 나이는 이빨의 상태로 알아봅니다." 교사가 곡마단 출신 소녀를 보며 말한다. "자 이제 말이 뭔지 알겠지?"
사실과 지식, 지혜를 말할 때 소녀의 말 못 할 사정을 헤아리는 눈이 필요하다. 여기저기 따다 붙인 사실 한 두 마디가 전부인양 선전하기보다 실체적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진정한 지식인이나 현자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노벨상을 수상한 행동주의 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인간에게는 "보이는 것이 전부다." (What you see is all there is.)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서 무수하게 들리는 소음, 치열한 속도전에 의해 인생의 목적은 오염되기도 하고 조작되기도 한다.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 이런 픽션의 세계는 물론이고 편집된 진실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쇼나 다큐멘터리, 인터넷에서 떠드는 수많은 사이비 현자들도 실은 얕은 눈속임으로 우리를 현혹할 때가 많다.
우리의 균형감각은 쉼 없이 위협받고 있다. 말의 습성을 속속들이 알지만 말을 못 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진득하게 기다리며 들을 줄 아는 깊은 지성은 스스로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떠먹여 주는 인스턴트 지식 또한 편협하기 그지없는 시각에 오염되었기 십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