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친구여.

by 호림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해관계의 실타래가 복잡해질 때 순수한 우정의 공간이 좁아짐을 느끼지만 문득 그 시절의 친구가 생각나기도 한다. 큰맘 먹고 만난 친구는 과거의 모습과 다른 경우도 있다. 화장하지 않은 모습으로도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언제나 그리운 존재다.


진정한 친구는 절대로 우리를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며,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인

자아이다. 이상적인 부모처럼 우리를 향한 친구들의 사랑은 우리의 외모나 사회적인 지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앞에서는 낡은 옷을 걸치거나, 올해는 돈을 전혀 벌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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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언제나 키 재기를 하며 커 왔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흐르면 일하는 분야도 다르고 삶의 내밀한 사연들은 모르기에 그저 보이는 명함과 외모로 가늠할 뿐이다. 이런 친구들을 줄을 세우는 일은 동창회의 일일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친구는 그 내면을 본다.


사람은 때로 흉금을 터놓고 자신의 가치를 알리고 확인받는 일이 없다면 고립무원의 삶이 될지도 모른다. 수도승 조차도 그 수행의 발자취를 누군가는 기록하고 전파하기에 그 가치를 후세에 남긴다.


폭우가 마치 친구의 사연을 더 들어주라는 듯 식당에 우리를 붙들어 두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친구는 집안의 기대주에서 뜻하지 않은 인생의 큰 맨홀에 넘어져 팍팍했던 삶의 역정을 얘기하기에 마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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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과의 깊은 우정을 나눈 예이츠는 "‘인간의 영광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생각해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 데 있었다’"고 했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아마도 좋은 친구를 닮았을지도 모른다. 시류에 휩쓸려 당대에 인정받기 위해 응석 부리거나 매달리지 않고 시대를 넘어 살아남을 작품이기에. 진정한 우정은 군더더기와도 같은 친구의 명함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잦아진 빗줄기 속을 쓸쓸히 걸어가는 친구의 처진 어깨가 펴져 영광의 순간을 같이 할 날을 기다릴 것이다.

예이츠의 시구를 마음속으로 음미하며.


가장 빛나는 순간에도

군중의 목소리와

새 친구들이 당신을 찬양하느라 분주해도

무례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옛 친구를 가장 먼저 생각하기를

세월의 시린 물결이 넘쳐

당신의 아름다움 사라질 때

그때 옛 친구 말고는 다른 사람이 다 잊고 말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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