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라는 원금 없이
창의력이라는 이자를
거저 가져갈 수는 없다.
미대 준비생들은
비너스상이나 아그리파상이라는
하나의 텍스트라를 붙들고
입시를 위해
미술 실기 시험에서 겨룬다.
미술품과 같이
형태가 명확한 텍스트가 있지만
수많은 글들은
납작한 종이에 숨어 있어서
자세히 읽지 않으면 안 된다.
파피루스에 갈대 펜으로
적혔을 서양의 그 많은 텍스트는
서양문명의 심장과 피가
되었을 것이다.
대나무에 기록되었을
공자와 맹자의 어록은
종이시대를 거치며
학자와 선비들이 읽는
텍스트가 되어
교양과 상상력을 키워주었을 것이다.
납작한 종이 위해 붙은 깨알들과
친해지는 시간이 없다면
창의력이라는 이자는
기대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생전의 박완서 선생도
눈이 나빠져 읽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호소한 바 있다.
누에고치가 되어 실을 뽑으려면
누에가 뽕잎을 쉼 없이 먹어야 하듯이
글을 쓰려면 부단히 읽어서
상상력과 창의력의 실을 뽑을
기초체력을 길러야 하겠다.
고갈된 원금을 불리기 위해
밀린 텍스트를 붙들고
휴일 한나절을 보낼까 한다.
텍스트로 남은 음악가들의 악상이
훌륭한 백색소음이 된다.
두꺼운 책이지만 시간도 넉넉하니
느리게 노래하듯이 읽어도 그만이다.
슈만의 선율처럼.
(218) Schumann, Piano Quartet in Eb Major, Op. 47, III. Andante cantabile, BCMF 2014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