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그래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예술"이라는 인식은 사실여부를 떠나
우리의 의식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론을 6단계로 늘이면 심미안을 갖고 예술을 즐기는 경지는 인간 욕구의 최상단에 자리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든 단계를 지배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슈만은 다락방에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법률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피아노를 연습했고, 차이코프스키 또한 법대 진학 대신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현대철학에 헤겔이 있다면 현대회화에는 폴 세잔이 있다. 파리로 그림 공부를 떠났지만 주류 화단에 어울려 적당한 그림으로 타협하지 않았다. 원근법이나 당시의 회화 문법을 근본부터 회의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열었다. 아예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내려와 일체의 교류를 끊고 살다시피 했다. 폴 세잔은 27년간 고향의 산천을 비바람을 비해가며 캔버스에 담았다. 그가 그린 사과는 뉴턴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와 함께 세상을 바꾼 3대 사과로 불릴 정도다.
이런 세잔과 함께 현대회화의 큰 줄기를 열어 간 앙리 마티스 또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도저히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붓을 들었다. 베토벤이 그 도도한 자존심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미래를 위한 음악보다는 귀족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호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줄 곡이나 당시에만 호평받는 인기영합형의 음악만을 작곡했을지도 모른다. 베토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는 베토벤이요"하는 자존심이 있었다. 당시 후원자였던 귀족과의 대화를 엿들어본다.
영주님 , 당신이 영주인 것은 우연과 출생 덕분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소. 세상에 영주는 수천 명이 넘지만 베토벤은 단 하나뿐이오.
<당신을 위한 클래식>, 전영범, P.83
파리의 의대생 헥토르 베를리오즈가 만약 해부학 실험실에서 뛰어나와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아름다운 선율을 우리에게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의 길을 가는 이 모두가 모차르트나 피카소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진정한 예술가를 향해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아마도 불확실한 험로를 걸어간 용기를 존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