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플루트 실력만큼이나 니체의 작곡 실력은 검증받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 솜씨 또한 취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니체처럼 <에밀>의 저자 루소 또한 작가이자 작곡가였다. 이들의 음악 사랑은 화가 앵그르의 바이올린 사랑만큼이나 각별했다. 앵그르는 자신의 그림 솜씨를 타박하는 것은 이해해도 바이올린 솜씨를 탓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서 '앵그리'한 상태로 돌변했다.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특정한 취미가 본업을 넘어서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이렇게 니체는 모든 예술의 최상단에 음악을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 신봉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말을 통한 소통은 음악에 비하면 모두 낯 뜨겁다. '말'은 품위를 떨어뜨리고 바보스럽게 만든다. 말은 개성을 앗아가고, 드문 것을 평범하게 만든다.
음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말할 수 있게 해 준다.
읽는 것은 듣는 것이다.
우리는 명확하게 잡히는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의미가 모호하거나 같은 단어라도 사용 맥락에 따라 천양지차가 되는 경험을 수 없이 하고 있다.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전달하기 지극히 부족한 수단이다. 음악은 때로 넓은 암시를 곁들여 감정을 전달하기에 적격인 경우가 많다.
니체는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자신의 대표작에 대해 스스로 교향곡 같은 장엄함을 지녔다고 했다. 니체의 저서는 같은 이름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교향시로 작곡하기도 했다. 이 곡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트로 음악과 장엄한 우주선 도킹 장면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올 추석 보름달이 백 년 만의 슈퍼문이라고 떠들썩해서 이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감상했으면 했는데 날씨가 흐려서 완전한 만월을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