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사에서 피카소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그 유명세에 버금가는 이들도 있다. 생존 시 가장 근접한 화가는 앙리 마티스였다. 세잔을 계승해 현대 미술이 우아한 선과 아름다운 색채로 대상을 표현하는 것만이 아닌 작가의 내면과 상상력의 세계를 구현해낸 점에서 피카소와 마티스는 개척자이기도 하다.
피카소가 형태의 마술을 부렸다면 색채의 마술사는 단연 앙리 마티스다. 한 평론가가 '야수'같은 느낌의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기에 이름 붙인 야수파는 마티스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12세 차이로 한참 형이었던 마티스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그림에 뛰어든 늦깎이였기에 화단의 선배 피카소를 존중하며 친구처럼 지냈다. 서로 격려하며 지내고 형태와 색을 훔친 듯이 모방하기도 했던 둘은 더없이 좋은 사이였지만 서로 자극제가 된 라이벌이었다. 마티스는 한때 피카소에 브랜드가 밀리고 자신의 그림이 한계에 부딪혀 암흑과도 같은 고독 속에 붓을 더 이상 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고독과 공황장애 같은 마음의 병을 얻었던 38세의 마티스가 택한 건 여행이었다. 스페인과 여러 나라들을 떠돌며 이방의 다양한 미술세계를 경험하며 또 다른 에너지를 얻었기에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붓을 들 수 있었다.
성악에서도 마리아 칼라스와 레타나 테발디는 세기의 라이벌로 회자되었다. 발성의 교과서로 불리며 사랑받았던 테발디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기에 선박왕 오나시스를 비롯한 남성들과의 화려한 연애로 주목받았던 칼라스와는 대조적이었다. 다소 거친 입담과 스타성으로 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칼라스였기에 테발디는 둘의 라이벌 구도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테발디는 "자신이 고급 샴페인이라면 테발디는 김 빠진 콜라"라는 칼라스의 비아냥을 들어도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남성 성악가로는 이제는 고인이 된 파바로티와 도밍고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아군을 칭찬하는 것은 작은 아량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라이벌이나 적을 칭찬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똑같은 방향으로 달리면 1등과 2등이 갈리지만 서로 약간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다. 살리에리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라이벌이자 천재를 시기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은 질투 많은 영감만은 아니었다. 살리에리 또한 베토벤을 가르치기도 한 훌륭한 교습가였다.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였지만 동시대의 재능 있는 청년을 결코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천재성을 알아보고 기꺼이 엄지를 들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악보를 본 하이든은 시도하던 오페라 작곡을 접었다.
영화 <대부>의 대사로 기억한다."친구에게 잘해줘라. 적에게는 더 잘해줘라."
우리 둘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해.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결코 얻을 수 없는 무엇을 잃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