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일계 유대인 여성은 뭉툭한 코와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지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삶을 찾을 줄 알았다. 바빠서 결혼할 시긴조차 없었던 코코 샤넬과 달리 두 자녀와 함께 한 남편이 있었다. 어린 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 아픔에 울부짖기도 했지만.
부유한 유대인의 딸이었지만 현모양처의 길을 가지 않았고 미술품을 구매하는 일에 빠졌다. 당시 유럽 부유층 여성들의 보편적 삶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파리와 런던, 뉴욕과 베네치아를 오간 삶의 행로는 다이내믹하다. 그녀의 일대기는 파격의 연속이었지만 그런 행로가 없었다면 후세대는 그 컬랙션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몇 번의 이혼경력이 있었지만 결코 자신의 예술품과는 헤어지지 않았다. 전쟁통에도 소장했던 그림들을 두고 갈 수 없었기에 껴안고 있다시피 하며 지켜냈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면서 회화사의 거물로 남은 이들과 교류하며 차곡차곡 쌓았던 작품들은 뉴욕의 명소가 된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한 유명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예술가들과 그 주변을 보면 보편적인 삶에 대한 상식은 가끔 무력해지고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에 대한 거대한 물음표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우리는 대개 "보편적인 사고"라는 틀이 주는 형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아득한 낭떠러지가 아닌 신천지가 보인다면 당신은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온한 질서가 흐트러질 때 그 혼란을 추스르고 평정을 찾을 수 있는 힘, 거기서 또 새로운 조화를 찾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예술이 주는 힘이고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불협화음이 주는 아름다움을 찾는 마음도 때로 순서를 뒤바꿔 발사하고 조준하는 태도도 예술이라는 그릇은 받아주고 품어주는 힘이 있다.
쇤베르크, 피카소는 음악과 회화의 문법을 완전히 바꾸려고 덤볐다. <달빛>의 드뷔시는 그 독특한 작곡법에 대해 스승이 C학점 이상을 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클래식으로 대중들에게 A학점을 받았다.
눈으로 가을 달빛이 들어올 때 귀로는 드뷔시가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