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작곡가들 중에 거장으로 불리는 이름들을 살펴보면 여성의 이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계 회화사에 남은 여성화가들 또한 흔치 않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이 화니 멘델스존은 재능이 넘치는 여인이었으나 그녀의 부모는 음악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차분한 신부수업을 권했다. 그래서 아들 펠릭스와 달리 악보를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지도 못했다. 멘델스존의 작품으로 알려진 상당수의 작품은 누이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는 음악학자들의 분석도 있다.
화가 수잔 발라동은 모델로 활동을 하다 로트렉이나 화가들의 연인이 되기도 했으나 드가에게 그림을 배워 화가로 데뷔한 당찬 여성이다. 조각가 로댕의 연인으로 알려진 카미유 클로델 또한 조각가였다. 두 여인들은 작품보다 사생활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병기, 이우환, 박서보, 이두식....... 웬만하면 익숙하게 아는 이름들이다. 한국의 현대 여성화가로는 천경자의 이름이 우뚝하고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잘 알려진 화가는 드물다. 지휘자 성시연이나 작곡가 진은숙 또한 여성의 존재감을 외롭게 지키는 이들이다.
여성이 예술에 소질이 없거나 거장이 되기엔 남성에 비해 뭔가 모자라는 존재인가? 절대 그렇진 않을 것이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르네상스 시기만 하더라도 직업적으로 여성들이 예술에 종사하는 이가 적었고 귀족이나 국가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대남이니 이대녀니 하는 단어들이 정치권의 부추김으로 표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남녀가 협력하고 조화롭게 세상을 만들어 갈 대상이 아닌 다소 적대적인 존재라는 시각이 은연중 자리 잡는다면 큰 일이다.
마리아 칼라스나 레나타 테발디의 목소리를, 프레디 머큐리가 반했던 몽세라 카바에의 음성을 어떤 남자가 흉내 내겠는가? 파바로티와 카루소의 음성을 어떤 여성도 흉내 낼 수 없듯이.
대영제국의 영화를 이끈 엘리자베스 1세와 얼마 전 영면한 2세 또한 여성이었다. 유럽의 병자 독일을 건실하게 이끌어 우등생으로 만든 부드러운 리더십의 총리는 앙켈라 마르켈이었다. 권력과 예술의 정점에 선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 남성들을 지배한 이 또한 여성이다. 조르주 상드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정서를 상당기간 지배했고, 페기 구겐하임은 당대 예술가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것을 우린 틀린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남녀의 문제 또한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지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은 틀린 이분법은 위험천만하다. 우린 평생을 두고 이성을 알아가야 할 존재이지만 100% 이해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저 다르다는 것만을 알아도 이미 절반은 이해한 것이 아닐까. 이 세상 절반의 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