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하나의 작품이라면 묘비명은 그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사인쯤으로 볼 수 있다. 묘비명으로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이는 작가 버나드 쇼다. 우물쭈물하다가 흘러가는 짧고 덧없는 인생을 위트 있게 표현했기에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린다.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언젠가부터 옹색한 도시의 아파트 방 한 칸이 전부인 듯한 마음에 들어온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고래를 선물한 이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고 작은 일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목숨을 걸듯 했을까. 사랑과 미움, 시기와 질투 같은 오욕칠정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철부지 같은 치기가 가득한 청춘의 홍역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두려움 없고 담백한 마음의 자세는 언제나 삶의 디폴트 값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희귀병으로 투병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후배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약혼자와의 불화는 견딜 수 있었다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내면의 고통과 싸운 시간을 말할 때 가슴으로 연민의 눈물이 흘렀다. 영원히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고통도 없기에 고통 속에 투병하면서도 그 터널의 끝이 보이는 삶에 희망을 걸고 당당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소중한 건강과 하루의 빛나는 가치에 대해 다시 눈뜨게 만들었다.
이 계절의 아름다운 단풍도 언젠가는 질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이를 가리키는 말에서 '철부지'가 유래했다고 한다. 차츰 철의 변화를 알아가고 고통의 의미를 알 때 우리의 삶도 단풍처럼 찬란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과학적으로 단풍은 녹색의 색소가 빠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 나무가 고통을 뚫고 우리에게 선물하는 대단한 예술품 단풍처럼 많은 위대한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고 화가 르느와르가 말했듯.
철부지가 되지 않으려고 절정의 가을에 미리 계절의 변화를 감지해본다. 단풍도 지고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쓸쓸한 어느 날, 마스카니의 이 간주곡은 우리를 겨울로 데려다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오페라에서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