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행을 다녀온 노교수님은 이집트에서 꼭 봐야 할 것은 문명의 발상지에서 캐낸 유물이 가득한 박물관, 고성, 모스크가 아니라고 했다. 언젠가 가게 되면 지중해를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지는 해변에서 장엄한 일몰은 꼭 봐야 한다고 일러주며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 보인다.
정년을 앞두고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다소 호화로운 유럽여행을 다녀온 선배는 유럽의 특급 골프장을 섭렵했는데, 알프스의 설산을 바라보며 날렸던 인생 샷의 감동이 아직 남아있다고 전한다.
인생의 한 허리를 뚝 떼어내거나 자신의 은행잔고를 푹 퍼내는 결심이 따르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감동은 가까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소박하거나 품이 그리 많이 들지 않은 의무를 이행하기만 하면.
이맘때 지천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의 축제에 초대받아 단풍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의무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두 장 남은 달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해야 할 관계의 침전물을 조금 앞당겨 살피고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먼저 악수를 내밀면 어떨까.
투병 중에 숨진 철학자 김진영은 그의 유고가 된 산문집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해 말하길 멈추지 말라고 했다. 아주 담담한 피아니시모로.
동장군이 곧 쳐들어 올지도 몰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을 오후 단풍을 지켜보았다. 초병이 보초를 서듯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의무를 다하며. 평소 그 존재의 고마움을 몰랐던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는 것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쉽고도 아름다운 의무가 아닐까. 늦기 전에 해야만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