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그 삶의 연료

by 호림

바람도 목적이 있는 배는 도와줄 것이다.


흐린 휴일 몇 권의 책이 친구가 되었다. 아문센의 탐험이야기와 베트남전이 낳은 슬픈 사랑이야기가 친구가 되었다.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극지 탐험에 나선 아문센에겐 거대한 부빙, 거센 바람과 혹한...... 대자연과의 싸움,

거기에 스며든 선원들 간의 갈등이 발목을 잡았지만 목적이 있는 배는 기어이 험로를 헤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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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베트남인,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꽃다운 젊은이들을 앗아간 베트남 전쟁은 그 속에 많은 비극을 잉태했다.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하얀 전쟁>...... 무수한 영화들,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월남 아가씨 킴과 미군 크리스의 사랑이야기, 거기에 스며든 이념의 그림자와 여러 인간 군상들과 그 갈등이 1970년대로 나를 데려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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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현실의 작은 돌부리에 차이며 살아가는 내 일상이 힘겨워도 생사의 기로를 헤치는 이들의 이야기에 비하면 애교 정도로 보였다. 오히려 아무런 고통이나 치열함이 없는 삶은 뭔가의 목적의식이 빠진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역사에 남을 걸작을 위해 매일 전쟁처럼 혼이 담긴 작품과 씨름했던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위대한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현실의 냉대를 이겨내고 사후에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뿐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가난, 정신병을 운명처럼 앓았던 반 고흐, 실연의 상처 속에서 그 아픔을 예술로 승화했던 슈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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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의 큰 물줄기를 만들었던 헤겔과 같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주변에 제자들이 들끓었던 헤겔과 달리 파리가 날리는 강의실과 초라한 위상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애완견 이름을 '헤겔'로 지어 발로 차며 학대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있지만 결코 기가 죽지 않았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의 대명사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동양의 불교적인 세계관을 흡수하며 음악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독특한 사상체계를 확립했다. 아마도 자신의 결핍과 고통을 엔진으로 삼았기에 서양철학사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배가 안정적으로 나아가려면 약간의 바닥짐이 실려 있어야 하듯이 우리 삶에도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