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기댄 행복

by 호림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장소나 시기는 물론 숱한 화제를 몰고 개막했다. 월드컵을 생각하면 성악가들이 떠오른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소위 쓰리 테너의 전성기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즈음이었다. 투병 중이었던 호세 카레라스를 위한다는 명분에 세 사람이 흔쾌히 뜻을 모은 것이다. "클래식 성악가도 팝 음악 스타처럼 대접받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파바로티의 말처럼 세 사람은 지구촌 어디서든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통장의 잔고를 쌓았던 것이다. 수만 명이 운집한 공연장으로 축구장,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제전인 월드컵 전야제는 이들의 몸값을 높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군대와 축구 이야기에 질색인 여성들도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라면 달라질 수 있다. 최영미 시인은 웬만한 축구평론가 못지않은 축구지식을 뽐내고 있고, 문외한인 여성들도 2002년 온 나라가 하나가 되었던 붉은 악마의 기억을 떠올리면 축구 이야기에 흥분할지도 모른다.


예술가들도 축구 사랑이 각별한 이들이 많았다. 축구의 나라 출신답게 파바로티의 축구사랑은 남달랐고, 쇼스타코비치도 축구를 음악만큼이나 사랑했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에 단골로 초대되며 FIFA 랭킹을 훌쩍 뛰어넘은 한국의 위상은 이제 적어도 남미의 축구 강국들은 넘어섰다. 아쉽게도 축구 강국 이탈리아와 G2로 부상한 대국 중국은 이 축제에 초대받지 못했다.

월드컵 직관을 위해 적금까지 들었다는 아르헨티나 축구 팬들의 이야기가 외신을 타고 들어온다. 어쩌면 순간에 그칠 수 있는 추억을 위해 긴 인생을 희생할 수 있는 매력이 축구에 숨어있다. 영국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게리 리네커는 "축구는 22명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라며 전차군단에 비해 월드컵에서 성적이 초라했던 축구 종주국의 씁쓸한 뒷맛을 얘기한 적이 있다.


우승 트로피의 향방, 한국의 호성적을 기다리며 축구의 열기 속으로 빠져볼까 한다.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고. 미래의 보이지 않는 행복보다 당장에 즐길 수 있는 그 짜릿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은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의 해에 만이라도 누렸으면 한다.


행복한 사람은 더 행복해지려고 축구를 보고 불행한 사람은 잠시나마 그 불행을 잊으려고 축구를 볼 것이다.


축구를 즐기는 순간만이라도 전쟁과 정쟁, 가난과 슬픔이 덮쳤던 세상의 먹구름은 잠시나마 걷힐 수 있으리라. 이제 네이마르의 프리킥, 메시의 드리블이라는 예술품을 감상할 시간이다. 물론 손흥민의 부상 투혼과 한국팀의 선전을 응원하는 마음은 기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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