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작업을 하지 않는 고통이 작업의 고통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작업에 임하는 법이다.
- 스테판 디 스태블러
아무래도 세상에는 중도에 포기한 소설이나 예술작품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햇빛을 본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작품은 작가나 예술가들의 인내를 먹고 자라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더러는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처럼 미완성인 채로 어떤 완성작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훅 들어온 겨울이 지난가을을 돌아보게 만든다. 쌓아놓고 읽지 못한 책이 나를 원망하듯 바라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야외 활동하기도 좋기에 유혹도 많았다. 진득하게 책을 붙잡고 앉아있기 아까운 날씨들과 높은 하늘, 단풍이 나를 실외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책들에게 변명해본다.
늘 그렇듯 읽기도 다소 부진했지만 쓰기도 계획보다는 못 미친다. 휴대폰을 열어보면 각종 SNS에 사진과 함께 자신의 행복해 보이는 삶을 뽐내는 글들이 많다. 그렇지만 진정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절망이 보이지 않은 인스타그램이나 TV 화면에 보이는 행복에 겨운 얼굴들도 그 이면에는 사실 자신의 내면에 웅크린 우울과 외로움을 감추는 가림막일 수도 있다.
화려한 화장으로 자신을 뽐내는 글보다 솔직 담백한 글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최근 자신의 첫 책을 건네주며 삶의 이면을 얘기했던 분이 생각난다. 수 없이 많은 출판사에서 원고가 거절되는 아픔을 겪었기에 더없이 소중한 책이라고 했다. 정성스러운 글귀가 적힌 책을 받아 들고 덕담을 건넸다.
지나고 보면 거절의 아픔은 고통 속에 성숙할 수 있는 거름이 된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수 없이 많은 출판사의 퇴짜를 맞았다. 거절 메시지에 지칠 무렵 어떤 출판사 사장이 퇴짜를 놓기 전 무심코 원고를 자신의 자녀가 재미있게 읽는 걸 보고 천신만고 끝에 구제된 경우다. 마가렛 미첼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바람처럼 사라질 운명의 원고였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사랑받는 작품을 꿈꾸지만 신데렐라처럼 태어난 작품보다 꾸준한 습작의 고통 속에 태어난 경우가 더 많다. 거절의 아픔에 지친 이라면 마가렛 미첼이 작품에서 말했듯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믿고 꾸준히 쓰다보면 태양은 언젠가 뜰 것이다.
글과 책의 힘을 믿기에 주말엔 한 동안 지지부진했던 원고에 손을 대며 진도율을 끌어올려야겠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고통이 일상의 즐거움을 넘어서면 작가들은 자판을 두드리고 펜을 잡을 것이다.
때로는 책 한 권, 문장 하나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저 텅 빈 종이를 바라보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되니까.
- 진 파울러 (미국의 작가 겸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