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니

by 호림

어릴 때 어떤 공연장의 이탈리아 식당 이름이 '벨리니'라고 해서 그것이 사람 이름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선배의 깨우침으로 아 그 벨리니구나 했던 적이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 가장 사랑받는 이름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생전에 벨리니는 도니체티의 라이벌이었다. 그의 작품이 성공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대중의 인기는 벨리니가 약간 앞선 듯했지만 도니체티는 못 말리는 다작가였다. 벨리니는 작품 수가 월등히 많은 도니체티를 애써 폄하하면서 거북이처럼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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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미 국민 작곡가로 명성이 높았던 로시니가 파리로 가서 사교계를 주름잡을 때 문화의 중심 도시 파리로 갔다. 로시니의 곁에는 시인 하이네가 있었다. 젊은 작곡가 벨리니의 외모와 실력에 반한 하이네는 "서른 넘어서는 죽음을 걱정하게나" 하면서 기분 나쁘게도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전한다. 그랬기에 벨리니는 하이네를 피해 다니며 그를 만나면 죽음을 쫓는 주술 의식을 하기도 했다.


결국 천재 요절의 법칙을 예견한 하이네의 잔인한 예언은 옳았다. 34세로 창백한 미남의 생은 불치병으로 그의 대표작 <노르마>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쇼펜하우어는 <노르마>를 완성된 최후의 비극으로 극찬했고, 이탈리아 오페라를 무시했던 바그너도 <노르마>만큼은 예외적으로 칭찬한 바 있다.


빈센초 벨리니의 장례식을 주관한 이는 로시니였고, 일생의 라이벌 도니체티는 <벨리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를 작곡해 추모했다.


Maria Callas (마리아 칼라스) - 정결한 여신 (Casta diva)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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