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읽을거리가 없으면 다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활자중독일 수 있다. 책에 대한 중독적인 집착은 가장 건강한 중독이 아닐까 한다. 책 또한 음식처럼 너무 편식하면 지성의 밸런스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취향은 어쩔 수 없는지 서점에 가면 대개 유사한 계통의 책에 손이 간다.
돌아보면 겨울철에 따뜻한 방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지성의 크기를 한 뼘씩 키워온 듯하다. 가끔 내무 사열하듯이 책을 돌아보는 기분도 흐뭇하다. 과거에 어떤 기분으로 어떤 곳에서 읽었는지 추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책도 눈에 띄고 몇 페이지 읽다가 포기한 책도 보인다.
공통점은 대부분의 책들이 콘텐츠를 쓴 저자의 노고에 더해 편집이나 디자인, 유통에 관여한 많은 이들의 함께 참여했기에 탄생했다는 것이다. 한 출판인은 이렇게 원고를 교정할 때의 마음을 표현한다.
교정지를 "읽는다"라고 표현하지만, 이 일을 하다 보면 눈으로는 종이 위의 글자를 쫓고 있지만 사실 진짜 읽고자 하는 건 저자에게서 아직 나오지 않은 말, 그러니까 말 이전의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의 머릿속에서 형체도 없이 짙은 연기처럼 소용돌이치며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펜 끝(키보드)을 타고 종이(모니터 화면)로 흘러나올 때 옆으로 새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하면 저자의 머릿속에 있는 말에 다가갈 수 있을까 상상력을 쥐어짜는 것이 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읽는다'라기보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말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책이라는 선물> 나카오카 유스케 외 지음, 김단비 옮김, P.97-98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책과 그 책을 만드는 일에 도전하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건강성을 잃지 않았고 살만한 곳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