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

어느 스님의 선방일기

by 호림

도인들처럼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은 아무 고민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인생이 고해의 바다라는 고승들의 법문, 늘 한결같은 신부님을 보면 정말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가끔 종교의 유무를 떠나 내 작은 속세의 짐을 상의하는 분들이 있다. 오랜만에 인사드린 은사님의 기력은 쇠했지만 형안은 여전했다. 그분이 권했던 책의 구절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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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 귀의한 선승들도 일종의 단체생활 속에서 속가와 비슷한 애환을 겪으며 수행을 이어간다. 그런 저런 선방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서 <선방일기>라는 책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진 지허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영원하다. 물질의 형태에서 보면 영원성은 부정되고, 물질의 본성에서 보면 영원성이 긍정된다. 영원성을 부인함은 인간의 한계 상황 때문이요. 영원성을 시인함은 인간의 가능상황 때문이다. 영원성을 불신함은 중생의 고집 때문이요. 영원성을 확신함은 불타의 열반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성을 배제하고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개발하여, 저 눈 속에서 탄생의 기쁨을 위해 조용히 배자를 어루만지는 동물처럼, 얼어붙은 땅속에서 배아를 키우는 식물처럼, 우리도 이 삼동에 불성을 개발하여 초춘엔 기필코 견성하도록 하자. 끝내 불성은 나의 안에 있으면서 영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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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광의 시간, 처절한 고통의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기에 지허 스님도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작품에 대한 무한 몰입으로 선승들의 참선이나 구도자 같은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작품과 함께 영원을 살기 위해 예술가들은 때로 고달픈 현실을 견딘다. 조각 전공의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렸던 기간은 4년이다. 그 시간을 구도자의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견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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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더 가까운 예술의 시간이 있다면 찰나의 인생이 있을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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