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by 호림

노화와 죽음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예언이 가끔 들리지만 아직은 데시벨이 높지는 않다. 죽음을 극복한다는 것을 과대망상적인 예언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죽음은 분명히 위협받고 있다. 죽음이 없어진다면 인간 사회의 질서, 신과 인간의 관계가 다 틀어지게 된다. 연금의 재원은 어떻게 할 것이며 자구상의 넘치는 인구는 어떻게 되며 생과 사를 노래한 그 많은 시와 문학도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우리가 죽음을 경험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는 않을지 두렵다"라고 인공지능 전문가인 제럴드 제이 서스먼 MIT 교수는 말한다. 인공 장기나 클론, 사이보그 같은 단어들이 쉽게 연상될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할 뇌의 저장 정보를 온전히 보존하고 거의 영구적인 재료에 이식한다면 영생은 구현될지 모른다. 이미 10여 년 전에 죽음의 종말을 선언한 과학자가 있었다.

2012년 외과의사이자 트랜스휴머니스트인 로랑 알렉상드르는 지난 250년간 인간의 수명은 세 배 가량 늘었고 앞으로도 인간의 수명은 완만하게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노기술과 로봇공학, 유전공학의 발전은 폭발적 생명연장을 실현시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강연회 참석자에게 "나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는 천살까지 사는 사람이 나올 거라 믿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인 바 있다. 인간이 천년 주목처럼 살다니.....


아직은 요원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갈 것임은 이제 공상과학 영화만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상상해 본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소수의 부유층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특혜를 누리게 되고 전 인류가 과학과 의료의 혜택을 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철학자나 시인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일까. 오라클의 창업자로 대단한 부호인 래리 앨리슨은 "죽음만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난다.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라며 죽음이라는 현상에 불쾌한 듯 도전하는 말을 한 바 있다. 이 윤택한 삶을 마냥 누리고 싶은데 '죽음'이란 놈이 앞을 가로막아서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심정일 것이다. 죽음을 일종의 비밀번호로 그것만 알아내면 궁극의 불로초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이나 미래학자도 등장하고 있다.


그 많은 유산을 남기고 간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며 순순히 받아들였고, 대다수는 자연의 이법으로 죽음을 언젠가는 찾아올 순간으로 여기고 산다. 아직 인류의 발명품은 그 빛이 바래지는 않았지만 그것의 존재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안티 에이징 산업도 번성하고 있다.

천국과 지옥이 없어지고 단테의 <신곡>은 고전의 지위를 잃을 것인가? 아마도 그 답은 우리 세대에는 쉽게 찾을 수 없을 듯하다. 엿가락처럼 삶을 늘리는 일보다 의미 있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매일 느끼며 사는 것은 인류에게 결코 빛이 바래지 않은 미덕이자 최선의 대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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