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리 마티스
디자이너로 제법 인정을 받았던 앤디 워홀에게 찾아든 회의는 진정한 창의성과 자유였다. 기본적으로 디자이너 일은 고객의 의뢰를 받아 일을 해야 했기에 이런저런 지시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의 창의성이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일은 예술이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예술은 보기 좋은 그림을 잘 그리기보다 뭔가 세상에서 독창적인 것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에게 예술은 사업이었다. 사업가 워홀은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라는 친구의 말에 힌트를 얻어 작품을 내놓았다. 돈을 사랑했기에 '달러' 모양을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했다. 전통적인 회화 작업방식 대신 조수를 여럿 두고 '팩토리'에서 일련번호를 붙여 예술품을 생산하다시피 했다.
마를린 먼로에서 마오쩌뚱까지 당대의 유명인이 망라된 작품들은 화제성을 더했고 워홀은 어느새 그들에 못지않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워홀 작품의 유명인 목록에 들지 못한 이들은 제발 내가 당신 작품을 살 테니 나도 그려달라고 조르는 일도 생겼다.
켐벨 수프 통조림 작품을 찍어냈을 때는 "가짜 통조림을 그렇게 비싸게 팔다니 진짜 통조림은 먹을 수도 있는데......" 라며 키치스럽고 예술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작품이라는 악평도 쏟아졌다. 악평도 호평만큼이나 작품가를 올리는 데 기여했기에 워홀의 사업은 더 번창했다.
가난한 체코 이민자에서 당대 가장 출세한 예술가의 어머니가 된 워홀의 어머니는 워홀의 작품에 사인을 하기도 했다. 워홀다운 키치스러운 방식의 효도가 아닌가 한다.
제법 잘 나가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현대미술의 역사를 만든 거인이 된 가장 큰 요인은 다른 이의 따가운 시선을 이기는 철판을 깐 두꺼운 얼굴, 그걸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용기'가 아니었을까.
-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