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 예술가

by 호림

엘비스 프레슬리, 케빈 코스트너,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연예인이라는 것 외에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운전을 직업으로 삼았었다는 것이다.


엘비스의 트럭 운전 경력은 유명하지만 코스트너의 배우 이전의 직업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영학도에서 세일즈맨으로 직장에 적응해갈 때 그는 배우가 되려고 그만두었다. 미친 짓이라는 주변의 우려대로 단역을 전전할 때의 수입은 생계비로 부족했다. 그래서 관광버스 운전을 부업으로 했다. 어느 날 버스를 몰다가 이 길이 아닌가 봐 하는 생각이 지배했고 결국 배우 일에 매진해 대배우로 우뚝 섰다.


세관원 앙리 루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즐겼지만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이 늦깎이 화가는 그림을 42세 정도에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루소를 화단에서 인정하기까지는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주업과 부업, 본캐와 부캐, N잡러 시대라고 하지만 하나라도 어디 똑 부러지게 하기가 쉬운 일인가. 프로야구의 오타니 선수의 재능 정도가 아니라면 N잡은 고단한 일이다. 오타니처럼 재능이 넘쳐 투타를 겸업하는 일은 행복한 일일 수 있지만 생계형 N잡러는 고단하다.


부업 이상으로 바이올린을 즐긴 화가 앵그르를 존경하기도 한 루소 또한 바이올린 솜씨가 상당해서 어린이들에게 교습하며 생계에 도움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루소는 글쓰기 교습도 하고 희곡대본을 쓰기도 했지만 문단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루소는 재혼까지 하며 7명의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세관원의 직분에 충실했고 "선데이 페인터"로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평론가의 저 그림은 아마 발로 그렸을 것이라는 혹평도 견디며 묵묵히 자신만의 화풍으로 매진한 결과 피카소의 엄지가 올라가고 아폴리네르 같은 문인의 인정을 받았다. 루소는 살아서는 가난과 씨름하며 살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원시의 자연과 동화 같은 상상력을 담고 우리를 맞고 있다.

케빈 코스트너나 앙리 루소 같은 늦깎이들도 신이 내린 목소리와 재능으로 일찌감치 성공가도를 달린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 못지않게 신이 사랑한 사람이 아닐까. 그 노랫말처럼. 소녀 출세 후 절실함이 무뎌지고 휘트니 휴스턴의 삶 또한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116) Whitney Houston - I Will Always Love You (Official 4K Video)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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