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스의 의식, 니체의 죽비

by 호림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수하고 잡다한 감각의 집적 혹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한 감각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차례차례 이어지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흘러간다.

- 데이비드 흄


놀랍도록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는 어쩌면 부끄러움도 삶의 일부라는 듯 쏟아냈다.


1933년에 영국에서 태어나 27세에 뉴욕으로 건너갔다.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하고 당시로서는 달갑지 않은 동성애 취향의 남자였다. 그렇다고 게이 클럽을 전전하지는 않았고 고독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다시피 하며 살았다.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계속하면서.


낡은 책들을 정리하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 솔직 담백한 신경학 의사이자 작가, 색스의 역저는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실험실의 과학자 같은 관찰형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마음에 깊숙이 들어가 같은 동류의식을 느끼며 부대낀 지극히 인간적인 의사이기도 했다.


부끄러울 수 있는 과거를 쏟아냈고 죽음마저 담담하게 응시한 색스의 글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신경학자로서 기억이 끊어진 환자들을 치료하며 느낀 사례들은 환자들과 부대끼며 온몸으로 쓴 글이기도 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선명한 의식으로 세상을 살다가는 축복에 대한 감사였다는 담담한 회고록 또한 올리버 색스 다운 기품이 있었다.


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기억이 끊어지는 끔찍한 일은 더 심하게 존재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어쩌면 삶은 의식의 명료함과 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활동하며 보초를 서는 일이 아닐까.


글쓰기도 이제 AI가 대체할 정도의 막노동이 될까 걱정하는 시대다. 그래도 챗GPT가 올리버 색스 정도의 글을 쓸 수 있을까는 의심이 간다. 니체의 죽비, 또한 새삼 AI시대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드보르작의 경쾌함으로 새벽, 잠든 의식을 깨운다.


(40) [ 2h Repeat ] 드보르작 (Dvorak) _ 유모레스크(Humoresque)ㅣ사색ㅣ휴식ㅣ독서ㅣ명상ㅣ백색소음ㅣ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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