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서를 어루만지는 음악이 어떤 이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공포를 불러오기도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엔 더 이상 서정시를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아도르노의 예언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류에 대한 준엄함 경고였다.
아우슈비츠의 비극 이후에도 인류는 예술을 즐기며 시를 쓴다. 심지어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도 오케스트라 선율은 나치 장교들의 귀를 간지럽히며 그 위선적이고 게걸스러운 욕망에 답하기도 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줄리아드를 거쳐 음악대학 교수로 활동했던 헨리 마이어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바이올린을 잡았던 마이어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연주한 음악은? 미국의 멜로디였다. 미국은 그들의 가장 큰 적국이었음에도 말이다. 우리가 음악을 쓴 작곡가들은 누구였나? 거슈윈과 어빙 벌린이었다. 두 사람 모두 유대인이다. 연주는? 역시 유대인들이 했다. 이 감상적인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다가 눈물을 보이는 이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나치 친위대 장교들이었다. 대단히 부조리한 상황이었다.
-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빌레나 애틀리 지음, 이석호 옮김, P.222-223
유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조피아 치고비악도 바이올린 주자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던 기억을 회고했다. 그녀는 자신이 나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연주했던 음악을 듣지 않고 그 선율을 기억하면 몸서리치다 어떤 일로 콘서트장에 갔다. 그녀의 이야기도 안타깝다.
아우슈비츠 이후 음악은 그녀에게 당시의 상처를 환기시켰고, 너무 고통스러워 거의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해방되고 10년이 지나자 치고비악은 큰 결심을 하고 콘서트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우슈비츠의 독일인들이 즐겨 듣던 오페라 <나비부인>의 아리아가 나오자 그만 졸도해 버립니다.
- <당신을 위한 클래식> 전영범 지음, p.61
드물게는 '야만'에 봉사한 음악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음악은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조미료임에 틀림없다. 스티븐 킹의 '쇼생크' 죄수들에게 그랬듯이.
비극 이후에도 서정시는 쓰여져야 하고 아름다운 선율도 더 많이 들려야만 한다.
(29) 083-'피가로의 결혼'-'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_'쇼생크 탈출'_모차르트.avi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