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순수의 사회

by 호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도입부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키팅 선생은 공부를 위한 공부, 암기를 위한 시, 지식으로서의 시를 말하는 학생들에게 책을 찢으라고 하고 진정성의 의미를 가르친다. 그렇지만 키팅과 학생들에게 닥친 현실은 결코 호학호락하지 않았다. 시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영혼은 언제나 빛나지만 현실의 무게는 늘 만만치 않다.


시인들도 죽은 이후 그 가치가 재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윌리엄 브레이크가 그랬다. 순수가 떠오르는 시인이지만 정작 자신은 가난과 무명의 긴 세월을 견디며 작품을 썼고 삶의 진정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몸무림 치듯 탐구한 시인이었다.


브레이크에게 그랬듯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는 결코 쉽지 않다. 청춘들에게 조차 '순수'가 장례식을 치른 지가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기에.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시대>에서 일부를 음미해 본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

- 윌리엄 블레이크


가끔 대학 교정에서 청춘들의 총총한 걸음을 마주할 때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궁핍한 시대였지만 강소 주에 새우깡이면 족할 가난한 낭만의 시대에는 반항할 자유가 넘쳤다. 그런 낭만과 자유가 거세되고 그저 좋은 학점과 좋은 직장을 위한 약삭빠른 생존논리만이 청춘들 앞에 놓인 듯해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캠퍼스의 한 귀퉁이에서 코로나 시대를 견뎌낸 까만 눈동자들이 이제 화사하고 밝은 얼굴로 연신 까르륵 웃음소리를 내기에 다행이다.


젊음은 항상 절망하고 일어서며 순수한 꿈을 꿀 권리가 있다. 청춘의 시간은 브레이크가 통찰했듯 무한을 쥐고 영원을 담을 거대한 그릇이다. 그 커다란 그릇은 결코 꽉 찬 지갑만이 아닌 문학과 예술의 향기 속에 순수의 이름으로 채울 때 더 빛날 것이다. 사무엘 울만이 정의한 청춘, 즉 특정한 시기가 아닌 생의 전 시기를 관통하는 순수의 향기를 채우지 않는 사람 앞에 있으면 오래가지 않아 질식할지도 모른다.


(239) Brahms : Concerto pour violon et orchestre en ré majeur op. 77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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