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에는 다양한 변곡점들이 있다. 때로는 한 개인에 의해 극적으로 어떤 경우는 집단적인 사조를 형성해
서서히 물결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크고 작은 물결과 파도가 느리거나 가파른 변화를 촉진한 계기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고흐는 고갱을 스승으로 대접하려고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경비와 숙소를 지원하며 남프랑스 아를로 초청했다. 고갱으로서는 생활고를 해소하려는 방편으로 갔지만 고흐와의 동거는 늘 불편했다. 고흐가 풍경화나 인물화로 실제 육안으로 보이는 그림에 집착할 때 고갱은 상상 속의 이미지를 지유자재로 구현하는 듯한 화풍을 선보여 고흐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림에서 실제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생각을 그리거나 표현하는 고갱의 후기 인상주의는 현대 추상미술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다.
사진기술의 발전은 정밀한 사실화나 빛의 움직임에 따른 사물의 묘사에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로의 전환을 더욱 과격하게 전환시킨 면이 있었다.
정통 클래식의 문법은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일정한 배치, 주제 선율의 주기적인 등장 듣는 이의 귀를 편하게 적응시켰다. 이제 이런 작곡의 문법은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를 거치며 극한의 완성을 이뤘기에 새로운 음악언어의 정립이 자신의 과제라고 본 이가 쇤베르크였다.
기존 음악언어는 이제 수명이 다했기에 12음 체계라든지 조성체계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클래식 음악의 근간을 더 탄탄하게 하는 새로운 음악언어를 고민했지 무정부주의적인 전복을 원하지는 않았다.
존 케이지는 정적으로 무대를 채운 <4분 33초>가 상징하듯 과격한 아나키스트의 면모가 있었다. 쇤베르크는 이런 존 케이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질서 있는 개혁이나 건설을 원했기에 무조음악이나 조성체계의 파괴를 통해 새로운 음악언어를 더 탄탄히 세우고자 했다.
쉔베르크는 존 케이지의 공연 초대를 거부했다. 몇 차례 요청에도 그는 변함없이 존 케이지의 공연에는
영원히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아마도 백남준이 첼로 연주자 샬롯 무어만과의 공연에 초대했어도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쇤베르크로서는 정통 클래식의 악보를 유지했기에 어떤 악동의 장난 같은 일시적 이벤트를 즐기는 이들과의 연대에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바로크, 고전, 낭만의 큰 주류 음악사의 물줄기를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데 절반은 성공해 현대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생존 시 그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불협화음적 요소를 인정했고 드뷔시의 인상주의적인 음악조류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평가했다.
미술사에도 후기 인상주의, 입체파, 추상표현주의 같은 변곡점들에 쇤베르크 같은 선각자들의 고민이 숨어있다. 입체파의 대문을 활짝 연 걸작으로 평가받는 <아비뇽의 처녀들>은 한 때 브라크 같은 피카소의 동료들에게도 "파블로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같은 혹평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전통을 지키면서 새롭게 도모하는 일은 어쩌면 전면적 파괴를 통해 무성한 잡초가 자라는 토양에 다시 씨앗을 심는 일만큼이나 어려울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의 고민을 사회현상의 해법을 지혜롭게 풀어내고자 하는 행정가와 정치가의 딱딱한 두뇌에 대입한다면 세상의 불협화음들은 좀 더 줄어들지 않을까.
Praeludium and Allegro - Pugnani-Kreisler - David Garrett - Sheet Music Play Along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