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분야에서는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하면 언젠가는 실증이 날 수 있다. 창의성과 독창성은 작가가 이런 익숙함에서 벗어나 대중의 기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로잡을 집요한 노력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다. 세상의 모든 혁신 또한 그럴 것이다. 모차르트의 선율을 배경으로 휴일 아침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모차르트의 경우 귀족에게 자신의 독창적 작품을 알리고 작품 의뢰를 요청한 대담한 면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예술의 대중성과 상업성에 눈뜬 그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면 아마도 클래식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100세 노인이 시진핑 주석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사진이 뉴스거리다. 그것도 의례히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미국과 중국의 외교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한다. 헨리 키신저가 죽의 장막을 걷어낸 지 50여 년이 지나 미중화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상실의 시대>로 소개되었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주말에 펼쳐본다. 1960년대 20대의 감성을 세계 보편의 정서에 연결시킨 솜씨가 어떤 것일까. 과거에 보지 못한 행간을 읽을 참이다.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배경으로 쓴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그런 파괴력을 지녔을까.
역사적 가정에 기반에 질문, 현실과 상상력의 세계에 대한 부단한 질문은 거인들의 지취를 더듬게 만든다.
외교가 가지는 속성의 하나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소설의 심리묘사 또한 그렇고 인간의 행동 동기나 의사결정은 언제나 안갯길을 걸으며 모호함을 걷어내는 경우가 많다.
부단한 호기심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능력을 지닌다면 결코 육신의 노화에 비례해 정신이 늙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칠순을 훌쩍 넘긴 하루키가 아직도 마라톤을 즐기는 그 강력한 체력으로 젊은 감수성을 잃지 않으려는 것일까. 늘 자신을 극복하고 세상을 놀라게 한 거인들은 엄살을 부리는 범인들의 각성제가 된다. 진정한 '호모 헌드레드' 키신저의 방중 또한 신선한 뉴스다. 음악 천재의 단명이 외교 천재의 장수를 보며 더 안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