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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Jul 24. 2023

극한의 완성도

영화음악 작곡계에서 베토벤 같은 존재로 엔리오 모리코네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미션>, <시네마천국>, <황야의 무법자> 같은 영화는 그 테마음악의 선율과 함께 기억된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에 영화음악은 영상미와 몰입 강도를 돕기 위한 보조수단 장도로 평가하던 시절에 엔리오 모리코네는 트럼펫 주자로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정통 클래식계의 주변부 정도였던 영화음악 작곡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확립했다. 그렇지만 늘 언젠가 그만두고 정통 클래식 작곡 쪽으로 돌아갈 태세였다고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고백했다.


클래식 음악의 거인들도 신분은 귀족의 의뢰로 여흥을 돋우고 그들의 정서생활을 풍부히 하도록 하는 정신적 하인 신분인 경우가 많았다.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악단을 데리고 작곡과 연주를 하며 생업을 삼았던 이가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이었다. 클래식 음악에서 불멸의 거인으로 남은 베토벤, 모차르트도 예술가 이전에 생존 당시는 귀족의 작곡 의뢰에 생계를 의존했던 생활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베토벤의 위대성은 자신의 음악이 후세까지 살아남아 감동을 줄 예술품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흔한 귀족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작곡가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 귀족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자 이런 말로 쏘아붙이는 배짱을 보여준 이가 베토벤이다.


영주님, 당신이 영주인 것은 우연과 출생 덕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소. 세상에 영주는 수천이 넘지만 베토벤은 단 하나뿐이오.

   - <당신을 위한 클래식>  전영범 지음, P.83   


분야를 막론하고 세상에 이로움을 준다는 전제 아래 극한의 완성도로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만든 사람을 진정한 예술가와 동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이 시간 어디선가 자신의 일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클래식의 경지에 이르도록 매진하는 사람은 예술가 내지는 인생을 예술로 만들어가는 사람임에 분명할 것이다.


클래식의 변방에 맴도는 영화음악 작곡가로 엔리오 모리코네를 진정한 작곡가로 취급하지 않았던 근엄한 음악학자나 베토벤을 무시한 영주의 자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두 예술가의 아우라 앞에 너무 왜소한 그림자 정도는 아닐까.


(50) "Deborah's Theme" Ennio Morricone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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