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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ug 12. 2023

인문학 르네상스?

길 위의 인문학,  부의 인문학, 식탁 위의 인문학......

동네 도서관에도 인문학특강 같은 강좌는 눈에 쉽게 띈다. 인문학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는 학문이지만 현실적으로 법벌이 수단으로는 유용성이 떨어지는 학문이란 인상이 있다. 그렇지만 인문은 어떤 면에서 어디든 붙이면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가 되었다.  


'인문'에서 글자를 뜻하는 '문'자는 무늬를 뜻하기에 인간의 무늬를 다루는 학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피엔스가 출현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 즉 인간의 무늬는 부단히 변해왔다.


인문학은 자신의 몫을 묵묵히 다해내는 사람들에게 보다는 "왕의 DNA"를 가졌다는 자신의 아이를 두둔하기 바빠 교권을 침해한 공무원에게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까마득한 시대의 선현들이 말했던 고전 몇 마디를 외우고 익히는 것도 인문학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무늬가 다칠까 걱정하며 우리의 공동체를 좀 더 살맛 나게 만드는 교양을 가르친다면 그건 넓은 의미의 인문학일 것이다.


'인문'과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르네상스를 맞은 듯 범람하지만 정작 흉악범이나 인성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는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난과 고독을 이겨내고 백년, 천년을 살아남은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한 예술가들이 남긴 무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또한 인문이 아닐까. 캔버스에 구현된 보는 인문과 오선지에 기록되어 귀로 듣는 인문에 심취한 사람이 고약한 인성으로 인간의 무늬를 다치게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Ivo Pogorelich Brahms Intermezzo Op. 118 No. 2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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