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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ug 27. 2023

안갯속에서

휘슬러(1834~1903)는 '안개'로 유명한 영국 화가인데 영국의 국민화가 격인 터너와 함께 풍경화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는 극찬을 했다. 예술은 어떤 면에서 발견의 미학을 극대화한 것이다.


동시대 문화의 첨병 역할을 자처하고 기행을 일삼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어떤 면에서 철학자 조지 버클리의 인식론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버클리는 정신과 그 정신의 소유인 관념만 존재하고, 그 이외의 물질적인 실체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관적 관념론을 대표하는 로크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버클리는 감각적인 사물의 존재는 지각(知覺)되는 것에 불과하므로 개개의 물체는 심리적인 표상의 결합이라고 보았다. 그 결과 "존재는 피지각"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탄생시켰다.


어떤 사물이든 우리가 입력된 정보로 인식하지만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 인식할 때 의미는 새롭게 부여된다. 뒤샹의 <샘>은 변기를 미술품 '오브제'로 둔갑시켰고 다양한 추상 미술의 세계는 의미부여의 마술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한국인이면 모르기도 쉽지 않은 김춘수의 시 <꽃>의 일부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에 부단히 의미부여를 하는 이가 아닐까. 아마도 그런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작품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당해도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의미부여의 마술이나 노력이 부족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1.5 Kg이 채 안 되는 복잡한 주름들로 이루어진 뇌 어디선가 당신의 행동을 명령할 것이다. 당신에게 세상의 낮은 평가에 결코 굴복하지 말라고.  당신의 가치를 너무 낮게 매기는 사람들의 평점에 주눅 들 필요도 없다.

최종적인 평점은 그리 성급하게 내리지 말 일이다.


1.5Kg 주름 속에는 당신이 좌절하고 싶을 때 써먹을 수 있는 보험 같은 마음을 담아두자.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을 패배자로 만들 수는 없다. 당신이나 당신을 평가하는 이들이 인식하지 않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안갯속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의 길은 그리 쉽게 열리지 않는다. 휘슬러도 터너도 안갯속을 거닐듯 자신의 작품을 다듬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Mahler Symphony No.5 IV. Adagietto, Karajan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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