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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Sep 01. 2023

막장에 대한 예의


막장 드라마가 유행어처럼 떠돌고 드라마 속의 마비된 윤리의식을 지적하는 소리들이 드높던 일도 그리 오래된 얘기는 아니다. 여기서 잠시 막장의 유래를 짚어본다. 강원도 어디쯤인지 지금도 탄광촌은 있을 것이다. 


광부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화석연료를 채취하던 소중한 일터, 광산의 깊숙한 곳을 막장이라고 했다. 위험하고 어려운 직업, 석탄을 캐는 광부들. 갈 데까지 간 인생들이 더 이상 세상에 기댈 데 없는 막막함 속에서 직업으로 택했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막장은 얼마나 거룩한가? 거기서 피땀을 흘리며 번 돈으로 자식들 교육시키고 일가족을 건사한 가장의 일터가 막장이기에. 언젠가 석탄공사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 기관을 대표하는 사장이 막장드라마라는 용어를 자제해 달라고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경북 문경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난 광부들의 굿 뉴스, 칠레 광부들의 인간승리가 있었던 곳도 막장이었다. 막장은 위대한 인간승리가 있었던 공간이기도 했다. 막장을 오염시키는 언어의 유희를 쉽게 용서해선 안 된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숭고한 숨결이 있는 곳을 더럽혀서는 안 될 일이다.  


생존을 위한 거룩한 드라마가 한갓 파렴치한 드라마 스토리에 매몰된다면 그건 막장을 모독하는 것이다. 세상을 표현하는 언어는 그 실상보다 늘 좁고 부족하거나 때로는 과잉이거나 불완전하다.

 

막장 드라마는 위태롭지만 막장은 위대한 삶이 숨 쉬는 공간이다. 토마스 브라운의 경우가 떠오른다.


많은 사람은 격언에 대한 무지와 진리를 향한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성급히 거짓의 군대를 공격하다, 진리의 적들에게 포획되어 전리품으로 남는다. 한 사람이 도시 하나만큼 큰 진리를 소유하고 있더라고 거짓에 패배할 수 있다.    - 토머스 브라운



(29) J.Brahms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 TRiNiTy Philharmonic Orchestra / 트리니티필하모닉오케스트라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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