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왔는가? 졸저를 전하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생각하다 우린 실상 남들의 내면을 모른다는 생각에 멈칫거리게 된다. 형식적인 미사여구는 식상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어떤 고통 속에 있는지 환희로 벅찬 나날을 살고 있는지 잘 모르면서 주제넘은 얘기를 한다는 것이 뭣해서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때 쓰는 것이 "OOO님 답게"라는 짧은 글이다. 대상이 어떤 사람이든 그 다운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여운도 남을 것 같아서다.
어느 누구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것은 어떤 대중문화와 환경이 획일화시켜도 저마다 다르고 고유하게 남은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끝내 스스로의 삶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누추한 삶이더라도.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 미국의 작가 아서 밀러의 <전락 후애 ; After the fall >가 있다. 헐리우드 스타에서 이제는 세기의 연인으로 남은 메릴린 먼로의 남편이기도 했던 아서 밀러는 이혼 후 먼로가 아픈 곡절을 겪고 자살한 직후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의 한 대목을 음미해 본다.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는 건 실수일 거야. 오늘은 갓 구운 빵 냄새를 풍기던 집이 내일은 연기와 피비린내가 젖기도 하기에. 오늘은 손가락이 잘린 정원사를 보고 기절했던 사람이 일주일 뒤에는 지하철 폭발 사고로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밟으며 다니기도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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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꿈속에서 만나는 아이가 하나 있었어. 내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하지만 난 바보인 그 아이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지. 하지만 그 아이는 계속 내 무릎 위로 기어 올라오고 내 옷을 잡아당기는 거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지. 이 아이에게 입을 맞추면 다시 잠들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고개를 숙였지. 끔찍했지만 입을 맞췄어. 인간은 이렇듯 자신의 삶을 끌어안고 입을 맞춰야 하지.
스스로의 삶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라는 멋진 문장이 여운을 남긴다. 자신의 인생을 격렬하게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일, 그것이 당신답게 사는 길이 아닐까.
가을 축제의 계절, 방방곡곡이 들썩거린다. 지구촌 한편에서는 전쟁의 포화에 어린아이들이 절규한다. 그래도 축제는 계속되어야만 하는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밥 딜런도 답을 못하는지 바람에게 답변을 미룬다. 분명한 건 우리 일상은 지속되어야 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은 격렬하게 포옹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