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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Feb 22. 2024

스토리셀링과 거대한 서사

소설을 쓰는 일은 머리가 빠지고 이가 흔들리는 끔찍한 경험을 수반한다. 그래서 소설 창작이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소설 창작은 현실로 뛰어드는 일이며, 체제에 큰 중격을 안기는 일이다.

   - 플래너리 오코너


스토리가 넘친다. 드라마로 영화로. 픽션보다 논픽션이 압도적이다.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의 서사를 찾는 것은 가벼운 스토리가 무수히 재생산되는 '스토리셀링'에 질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셀링하는 것이 미디어의 속성이다. 중독될 정도로 달콤하다. 거기에 시간을 맡기면 편안하지만 공허한 경우가 많다.


익숙한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은 브런치를 즐기며 커피 한 잔을 곁들이듯 안락하고 편안하다.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은 에베레스트 고봉을 등정하듯 숨 가쁘고 고통스럽다.


일일드라마의 스토리와 사극 같은 스케일이 큰 서사는 그 양과 질에서 차이가 있다. <피로사회>의 한병철도 현대인에게 닥친 서사의 부족을 이야기한다.


삶에서 반복되는 소소한 스토리의 쳇바퀴를 넘어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그 사람의 그릇을 결정한다. 자신의 그릇을 조금씩 키워가는 노력이 없다면 그 인생의 서사는 쪼그라들 것이다.


안락한 소파에서 스토리를 소비하고 삶을 흘러 보내다가 작가 오코너와 한병철의 죽비를 맞았다. 생각의 곳간에 바닥이 보이자 서사의 부족을 채울 궁리를 한다. 그간 게을리 한 공부가 생각나 책더미 속으로 들어갔다.

마스네의 선율이 새벽을 깨운다.  


Jules Massenet - Meditation from Thais for Violin and Piano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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