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키운 인생과 예술

by 호림

최근 어느 기업가를 만나 딸이 오랜 유학 생활에서 돌아와 같이 생활하게 되니 딸에게서 그전에 보지 못한 면모를 발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은 한때 사업이 어려워져 학비를 보낼 수 없었기에 귀국을 종용했으나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버텨온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최근 같이 생활하면서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며 결핍이 준 시련의 시기가 오히려 딸을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회고한다.


예술가들도 완벽한 후원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보다 때로는 결핍 속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헤쳐가는 경우가 더 큰 울림을 남기기도 한다.

고갱이 금융인으로 네덜란드에서 승승장구하기만 했다면 타히티섬으로 가서 원시의 자연과 여인을 그렸을까.


번듯한 후원자는 없었다. 거의 매일 술에 절어 살며 노숙자가 따로 없을 정도의 행색에 궁핍이 일상이다. 인물화를 즐겨 그린 그에게는 아름다운 여성을 그리고 싶어도 모델을 의뢰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청년의 모습을 보고 모델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청년은 르네상스 회화의 큰 봉우리를 이룬 카라바조였다. 그의 그림은 섬세하고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결핍을 모르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예술가 될 수 있겠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풍요와 여유가 키운 예술이나 예술가보다 결핍이 키운 예술가가 더 많았다. 작곡가로 두 명의 부인에게서 무려 스무 명의 자녀를 두었기에 일감을 찾아서 동부서주 했고 쌀독은 비지나 않을까를 늘 걱정했다. 부단히 오선지를 메우며 의뢰자를 가리지 않고 작곡해야 할 처지였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아버지’ 얘기다. 한 조사에서는 인류의 유산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후세에 가져갈 목록에 그의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 이 꼭 들어가야만 한다고 했다. 초상화로 보면 부유한 저택에서 기름기 흐르는 음식만을 먹었을 법한 바흐도 결핍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를 충실히 채우며 살았다. 음악의 아버지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처럼 삶이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르네상스 회화의 가장 큰 전환점은 원근법의 발견이다. 인생에 가끔 원근법을 적용해서 보면 어떨까. 길게 보면 새옹지마가 되고 전화위복이 되는 사실을 항상 늦게 알게 되거나 영원히 알지 못해 때로 비극이 잉태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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