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피카소, 파바로티, 이들의 공통점 하면 세상이 다 아는 예술가라는 것 외에도 하나 더 있다.
생전에 갑부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돈을 많이 번 예술가라는 것이다.
카라얀은 음반 산업의 성장기와 라디오, TV라는 대중 미디어의 발전에 올라탄 경우다. 카탈루냐 촌놈 피카소는 파리의 예술계에서 시인, 화가들과 부단히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만의 화풍을 찾아나가며 미술 시장에서 가치를 증명해냈다. 파바로티는 클래식 아리아의 고고함이란 울타리를 걷어차고 나와 대중들과 폭넓게 만나는 무대에 섰다. '쓰리 테너 프로젝트'는 대중들의 환호와 통장의 잔고 둘 다를 만족시킨 경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극소수의 대척점에는 극과 극의 상황도 흔히 볼 수 있다. 연휴에 지방 소도시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유원지에는 기타 하나를 매고 벤치에서 대중가요를 부르는 거리의 악사가 있었다. 지나가다 지폐 한 장을 넣고 잠시 벤치에 않았다. 열심히 부르기는 하는데 쓸쓸한 광장에 배경음악 정도로 들릴 뿐 집중해 듣는 이는 몇몇이 있을 뿐이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도 그 옆에 있었지만 그의 앞에는 아무도 없다.
이런 분들 모두를 예술가의 울타리에 넣는 데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분들이 상징하듯 예술을 생계로 삼는 일은 거대한 비즈니스의 한 축으로 들어간 스타가 되지 않은 이상 외롭고 힘든 일이다.
코로나 장기화의 여파는 소상공인 못지않게 공연예술인들에게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무대에 서는 예술인들에게도 사람들이 모일 수 없는 상황은 참담하다. 이들이 서는 크고 작은 무대가 활기에 차고 관객들의 어깨가 들썩거릴 해빙의 날이 빨리 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