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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Feb 09. 2024

또 한 번의 새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이 연초에 이어 앙코르로 들리는 설 전이다. 생소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시 한번 새해 결심을 떠올린다. 술값과 책값의 비율에서 책이 우위를 점하게 하자거나 소소한 실천 항목들을 만들어보았지만 늘 작심은 오래 못 가 방심에 굴복한다. 


인생은 어떤 면에서 시간관리인데, 두 러시안의 삶에서 결심의 단초를 얻었으면 한다. 구 소련의 과학자 류비세프의 저서와 논문은 경이롭다. 곤충학과 해부학은 물론 진화론 같은 다방면의 진지한 과학서적을 수십 종을 쓰는가 하면 연구 논문도 수백 편을 발표했다. 그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나 전쟁 중에도 부단히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기록했다. 일상을 분단위로 계측해 그의 삶에서 시간이 새어나갈 틈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 또 한 명의 러시안이 있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정치범이 되어 사형집행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순간 짜르의 특사가 사면 소식을 들고 형장으로 달려와 극적으로 사형을 면했다. 이 사형수는 극적인 감형으로 시베리아에서 4년간의 유형을 마치고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글을 썼다.


우리가 잘 아는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소중한 삶의 가치를 새롭게 알고 부활한 것이다. <죄와 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느 사형수가 평생 아니 1천 년 동안 1 아르신(반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해도 죽은 것보다 사는 편이 더 낫겠다고 했다지!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 수만 있다면......"

소설에서 노파를 살해한 펑년 라스콜리니코프의 독백은 도스토옙스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했던 독백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는 <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에서 마주 볼 수 없는 것은 태양과 죽음만이 아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인생 또한 그렇다. 우리가 삶을 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나 산, 지는 해를 바라보듯, 갈매기가 날고 말이 달리는 걸 관찰하듯 인생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그 바깥에 있어야 한다. 밖에서 응시할 때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연휴는 촘촘한 삶을 반추하고 그 삶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를 준다. 류비세프와 도스토옙스키 같이 한 톨의 시간도 남김 없을 정도로 아낌없이 쓰고 간 현인들은 무언의 메시지를 그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고 반성 없는 삶에 매몰되기 쉬운 사람에게는 가끔 쉼표가 주어져도 그 가치를 모를 수 있다."


새해에 그 값진 교훈을 떠올린 두 명의 러시안만이 아니라 음악으로도 러시아는 내게 많은 보물을 선사해 주었다.  


Tchaikovsky - Piano Concerto No.1 키신과 카라얀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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