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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Mar 08. 2024

상상력의 예술

우리가 아는 것을 모두 합해도 지금도 우리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윌리엄 하비


책을 몇 권 썼는지가 대화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노교수님은 한참 듣고 있다가 단순히 양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라고 하며 한 권이라도 얼마나 세상에 의미 있는 울림을 주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상 어떤 책은 자연 훼손에 기여할 정도로 목재로 만든 종이가 아까운 경우도 많기는 하다.  


AI 시대에 책 쓰기는 어떻게 진화할까. 모든 작가들의 고민이 담긴 질문일 것이다. 기술 진보에 따라 우리가 지식을 전수하고 해독하는 방식이 변화했음은 뒤를 돌아보면 보인다. 노트북 컴퓨터는 타자기, 워드 프로세서, 각종 필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수천 년 전에는 파피루스에 갈대펜이 이었고 대나무책이 있었다.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의 뿌리와 근원을 더듬어 가다 보면 결국 예술이라는 넓은 바다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한 톨 생각의 씨앗이 1.5kg장도의 작가의 뇌에 올라타 거대한 서사를 만들고 아름다운 선율과 명화를 낳았다. 어떤 화가의 작품 한 점이 흔하디 흔한 액자로 내 시선에 들어온다.  


요하네스 페이메이르는 남긴 작품수가 37점으로 단출하다. 피카소의 5만여 점에 이르는 작품 수는 차치하고 짧은 생에도 500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반 고흐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강렬한 작품 하나의 존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명화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페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작품이나 영화를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상상력을 가미해 소설을 쓴 이는 트레이시 슈발리에로 작은 그림 앞에서 17세기 네덜란드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화가와 시중드는 아가씨의 심리를 파고든다. 영화는 콜린 퍼스와 스칼릿 요한손 명연이 더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를 본 뒤에 한동안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팩트'인양 착각하고 지낸 적이 있었고 그 그림을 어딘가에서 스치는 순간이면 소녀의 애처로운 삶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림은 거의 실제 얼굴만 한 크기로 그려졌기에 작품은 아담한 초상화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서사를 만들어낸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탄복할 뿐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미켈란젤로의 대작이나 르네상스 시대 거대한 명화 앞에서 우리가 그 작가의 노력과 솜씨에 감탄하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동과 상상력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예수와 부처,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심성에 대한 대단한 통찰을 지닌 선구자임이 분명했던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어록을 회고하고 그들의 말로 책을 만든다.  간혹 신화라는 옷을 입히고 고증하기 힘든 발언이나 그들의 정신도 후세인들이 상상력이라는 조미료를 더해 방대한 두루마리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우리가 꾸역꾸역 집어넣은 지식들은 때로 광활한 상상의 영역과 거대한 서사 앞에서 무력하고 초라해질 때가 있다. 


Camille Thomas – Donizetti: L'elisir d'amore: Una furtiva lagrima (at Le Musée des Arts Décoratifs)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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