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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Mar 04. 2024

앙드레 지드의 피아노

화가 앵그르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는 참아도 바이올린 실력을 문제 삼을 때는 화를 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기에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보통 자신의 주특기를 직업 외에서 찾을 때 그것을 거의 프로의 경지로 해내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그 피아노 솜씨는 알 수 없어도 대단한 음악적 심미안을 가진 프랑스 작가가 있었다. 앙드레 지드가 쓴 <좁은 문> 은 세기의 작품이 되었지만, 그가 쓴 산문에서 보이는 피아노 사랑과 쇼펭에 대한 존경 또한 대단하다.   

<쇼팽 노트>라는 일기 형식의 작은 책에는 그의 피아노에 대한 애틋한 연모에 가까운 사랑, 쇼팽 음악에 대한 무한 찬사가 이어진다. 또한 거의 매일 피아노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며 지낸 이력이 보인다.


내가 쇼팽을 좋아하고 그를 칭송하는 점은 이러한 슬픔을 통해 또 그 슬픔을 넘어서 그가 기쁨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쇼팽에게서는 기쁨이 지배적이다(니체가 아주 잘 느꼈다시피). 슈만의 어느 정도 간략하고 범속한 기쁨과는 전혀 다른 그런 기쁨, 모차르트의 지복과 상통하지만 좀 더 인간적이며 자연에 동참하는 기쁨, 그리고 베토벤 <전원교향곡>에 나오는 시냇가 정경의 형언할 길 없는 미소가 그렇듯, 풍경과 하나로 녹아드는 지극한 행복, 드뷔시와 몇몇 러시아 작곡가들이 등장하기 전에 음악에 이토록 빛의 장난이며 졸졸대는 물의 소곤거림이며 바람 소리며 나뭇잎과 새소리들이 스며들어 있는 경우는 쇼팽 이외엔 없는 것 같다.

      <쇼팽 노트> 앙드레 지드 지음, 임희근 옮김, p.22-23  


저녁마다 반시간 동안 나는 다시 '푸가의 기법'에 깊이 빠져든다. 전에 내가 이곡에 대해 말했던 내용은 더 이상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 이 곡엔 차분함도 아름다움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정신의 고뇌 그리고 법률처럼 딱딱하고 비인간적으로 완고한 형식들을 유연하게 누그러뜨리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같은 책,  p.66  


문장의 멋과 그 스토리의 완결성, 그림의 미적인 성취, 공기의 떨림에서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다가오는 음악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그렇지만 궁극의 아름다움을 찾는 오감, 거기에 따뜻한 심장이 있다면 세상은 살만할 것이다. 그러기에 대가들도 예술의 경계를 넘어 미적 갈증을 채우려 했을 것이다.


대단한 컬렉터가 자랑하는 수장고에 보관된 고가의 명화 보다도 거실 벽에 걸린 그다지 비싸지 않은 그림 한 점의 효용이 클 수가 있다. 늘 곁에서 보는 즐거움을 주기에. 엄청난 음악가들의 공연도 편하게 자주 들을 수는 없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무시로 직접 연주할 수 있다면 그 서툰 솜씨도 불세출의 재능보다 스스로에게 더없이 큰 위안과 몰입의 즐거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강변에서 들리는 홍길동 씨의 색소폰 소리가 간혹 귀에 거슬려도 '앵그르의 색소폰'이나 '지드의 피아노'로 가는 여정으로 여기며 너그러이 지나치면 어떨까.


Chopin: Ballade No. 4 in F minor, Op. 52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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