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찬 프로덕트 매니징 (04)
2009년부터 정식으로 서비스기획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따금 다른 분들께 좀 도움이 되려나 싶은 글을 써내기도 하지만 제게도 서비스기획자로서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들이 있었어요. 과거체로 쓰지만 그 실수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실패가 제 실수 하나로 인해 비롯되지는 않았겠지만, 만약 제가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저의 경력을 진지하게 회고한다면 반드시 실패라고 이야기 하겠다 싶은 몇몇 경험들을 소개합니다.
시장의 TOP을 달리는 서비스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패스트 팔로잉 해야 할 것만 같은 절대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업계의 선두주자들은 그 시장의 키워드를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서비스 형상을 가지고 있지요. 그 형상은 사용자와 고객의 마음속에도 굳건히 자리잡혀 있습니다. 으레 커머스 하면 떠오르는 서비스들, 모빌리티 하면 떠오르는 UX, SNS 하면 떠오르는 어떤 동일한 경험 패턴과 같은 것입니다.
요즘은 니치마켓도 활성화 되어있는데다 업계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커머스라고 해도 다 똑같은 커머스가 아님을 소비자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업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커머스라는 카테고리에 새롭게 발을 담궈야 할 때, 우리만의 차별점을 치열하게 고민하여 시장 포지셔닝을 잡기 전에 커머스 서비스가 가지는 공통적 특성들을 그러모아 대개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힘을 얻기 쉽습니다.
패스트 팔로잉은 업계 TOP서비스의 운영 원칙과 설계를 그대로 이식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운영 원칙은 그 서비스가 추구한 방향이 결과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조금만 이성을 차리고 보면 경쟁사들끼리도 완전히 다른 서비스 전략을 취하고 있고, 바로 그 전략이 해당 서비스를 주목받게 만드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철저하게 정의하여 검증하고 가야 하는 프로덕트 매니저들 조차도 시간과 자원부족에 쫓겨 빠르고 쉬운 길을 선택하고는 합니다. 분명 나 또한 소비자로서 카카오뱅크의 첫 런칭에 열광했음에도 막상 그 차별점을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죠.
패스트 팔로잉이 실패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패스트 팔로잉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서비스를 완전히 똑같이 흉내내기 위해 필요한 경험치 뿐만이 아니라 규모를 만들어 낼 시간, 투자금 같은 물리적 자원도 부족합니다. (하다못해 서버같은 것들도요) 뼈아프지만 대개 수년간은, 어쩌면 10년이 지나도 시장 선점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역량에는 물론 경영진의 인내심도 포함이 됩니다. 또 패스트 팔로잉을 어느정도 달성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서비스의 치명적 약점과 디펜스 방정식 또한 함께 들고오게 되지요. 이 약점에 당황할 시점이 되면 이미 늦게 됩니다.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가 이 실수들을 바로 잡을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다시는 ○○같은 서비스를 하겠다 라던지, 커뮤니티 서비스를 하겠다와 같이 얼버무린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문서로는 경쟁사 분석을 철저하게 해놓고도, 시장의 빈 사분면 보다는 채워진 사분면에 주목하면서 분석을 무효로 만드는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경쟁사가 아니라 그 경쟁사가 붙잡고 있는 고객의 특성을 분석하는데 주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가까이 지켜보았던 최악의 사업 전략은 경쟁사들이 포지셔닝한 시장 4사분면의 모든 사분면을 순서대로 돌며, 그것을 단계별 전략으로 칭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 당시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것이 몹시 속쓰리네요.
플랫폼이라는 단어만큼 업계 관계자들을 속썩이는 단어도 없을 것 같습니다. 플랫폼에 대한 정의가 여러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특정 시장의 지배력을 갖고 싶다(독점하고 싶다)는 표현과 거의 동치가 아닌가 합니다.
현재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온 플랫폼 사업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규모감으로 사용자들에게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SK C&C DC화재로 카카오 브랜드의 거의 모든 서비스와 파트너 서비스들이 셧다운 된 사건을 보면 잘 알려진 플랫폼이 얼마나 일상 곳곳을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다양성과 규모가 후발주자들의 전략적 실수를 유발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일명 플랫폼 전략을 취할 때 후발주자들은 시장 선도 사업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따라합니다. 보기만해도 움츠러드는 압도적인 서비스 개발 To-do-list가 따라붙게 되지요. 대개 플랫폼 포트폴리오에는 서비스 양대장인 커머스 기능과 함께 노드 회원의 개념과 이들간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반드시 포함되기 때문에 IT업계 대부분의 레퍼런스를 다룬다는 착각감도 일으킵니다.
이렇게 보면 1번의 패스트 팔로잉 전략이 유발하는 실수와 맥락이 같습니다. 내적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선도 사업자의 서비스 모델을 한꺼번에 이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플랫폼 전략이 단일 서비스의 패스트 팔로잉보다 조금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의존도와 연계성이 높은 여러 서비스와 백플랫폼을 한꺼번에 병행해서 만들겠다는 의사결정을 생각보다 쉽게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플랫폼은 Lock In의 핵심이 되는 단일 코어/킬러 서비스로 시작합니다. 검색이 그랬고 메신저가 그러했습니다. AWS의 경우 검색, 메신저와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지만 오브젝트 스토리지인 S3와 가상 컴퓨팅 리소스 EC2로부터 차례차례 서비스 락인을 시작했죠. 사용자가 매일 반드시 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서비스가 이 다음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역시 제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플랫폼을 하겠다와 같은 퉁쳐진 전략 키워드에는 절대 반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전략 키워드를 채택하는 곳에서는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습니다. 실무자로서 늘 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만 보고 해야하는 것이죠. 저도 경력을 쌓는동안 플랫폼이라는 단어에 여러차례 현혹되었고, 의사결정에 따라 맹목적인 개발을 시작한 적이 많습니다. 결과는 늘 프로젝트 드롭이었죠. ^^;
비전맵 펼치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속쓰린 실수 사례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렸을 때 굉장히 즐겨 만들었고 좋아하는 산출물 중에 하나였거든요. 제가 주니어 시절에는 항상 우리 조직과 서비스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멋진 영웅이 나타나서 우리가 서있는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기를 바랐습니다. 혼자서라도 이 맵을 만들어야겠다, 저는 종종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기획자들에게 마인드맵이 참 단순하면서도 멋진 도구입니다. 마인드맵을 이용해서 키워드를 펼치고 나면 그렇게 있어보이고 든든하고 뭔가 해낸 것 같습니다. 마인드맵은 펼치는 도구입니다. 즉, 발산하는 수단이죠. 발산의 레벨은 아이디어나 관념, 가설에 그칠 뿐입니다. 발산을 한 뒤에는 합목적적인 수렴을 해야하는데, 우리는 이 과정을 디자인/설계 라고 부릅니다.
저도 똑같은 실수를 했었지만 경영자들 또한 마인드맵에 키워드를 펼치고, 이것이 그대로 브랜드 설계가 되거나 사업기획이 되거나 조직구성이 되는 경우를 저는 너무도 많이 봐왔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거다 라고 퉁친 후 그것을 비전이나 지도 Map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대개 키워드들은 멋있기도 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자나 소위 전문가가 이런 산출물을 내놓으면 정말로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키워드대로 서비스나 조직이 움직여질리가 만무하니까요. 일명 비전대로 움직여지지 않기 때문에 꼭 중간에 맵을 수정하려고 시도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이 단어 저 단어들을 합쳐, 플랫폼, 비즈니스, 공통모듈... 등의 키워드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플랫폼이라는 말이 등장했다면 그 다음은 예정된 수순입니다.
위 1, 2, 3번의 실수에는 모두 공통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퉁치고, 어스름하게 하고, 늘어놓는다는 것입니다. 늘어놓는 것을 구조화라고 착각하는 것이죠. 지금의 저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새로운 사업과 서비스를 시작할 때는
- 우리의 고객이 누군지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정의할겁니다.
- 경쟁사를 포함한 시장조사를 한 후에는 엄격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빈 포지션을 끝까지 찾을 것입니다.
- 단 하나의 킬러 서비스(문제와 연계된 솔루션)를 먼저 계획할 겁니다.
- 포트폴리오 갖추기를 위한 기획과 개발이 아닌, 실험과 검증의 개발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 서비스 비전은 키워드로 펼친 맵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표현할 겁니다.
여러 개인 사정이 있어서 오랫동안 브런치 포스팅을 못했습니다. 사실 놀지는 않았습니다. ㅠㅠ
퍼블리에 데이터를 해석할 때 하기 쉬운 N가지 실수를 기고하였습니다. 이 글을 브런치로 옮겨오지 못하는 것을 양해 부탁드려요.
또, 패스트캠퍼스에서 서비스기획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총 4개의 파트를 맡았습니다.
** 표시 된 것이 제가 한 강의입니다
Part 0 - 짚고가기**
서비스 기획 이론과 실습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적지 않은 시간동안 직무 접근법, 직무 철학과 비전, 마인드셋을 알려드리는데 집중했습니다. 직무 발전 히스토리, 직무 성공 지표, 조직 구조, 직무의 성향 등등을 짚었습니다.
Part 1 - 서비스기획 전반 이론
필수로 아셔야 할 모든 이론이 들어있습니다. 문제 발견부터 개발 프로세스까지 A-Z의 용어와 개념을 다룹니다. 다른 강사님께서 강의해주십니다.
Part 2-1 - 역기획
요즘 역기획 강의가 흥하고 있죠! 이커머스, O2O, 핀테크 세 개 필드의 역기획을 각기 다른 강사님들께서 상세하게 강의해주십니다. 저도 정말로 재미있게 듣고 있어요.
Part 2-2 - 프로토타입 강의**
Figma를 활용한 High Fidelity Prototyping 강의입니다. 서비스 기획자에게 있어 프로토타이핑의 의미에 대해 짚었고, Figma의 기본 기능들을 모두 설명드렸습니다. 디자인을 예쁘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툴의 기본을 다루는 시간으로 하였습니다. 제가 만들어 둔 Figma 파일을 공개해 두었습니다.
Part 3 - 리얼월드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사실 이 파트를 위해서 강의를 맡았습니다. 정말 심혈을 기울였고 그만큼 강의 기획도 힘들었습닏니...;ㅅ;
전형적인 이론형 강의가 아니라 신입 PM인 그래가 가상 회사에 입사해서 가상 과제를 맡아 1년 반을 보내는 스토리 중심 체험형 강의입니다. 이론 강의들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지만 실무에서 필수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여러가지 업무 개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또, 디자이너, 개발자 등 다른 직군과의 회의 상황도 포함되어 우리 동료들이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짚어봅니다. AARRR이 실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고객 가치를 어떤 과정으로 발견하게 되는지, 새로운 서비스를 어떻게 제안하게 되는지, Job Story 및 JTBD, User Story, Acceptance Criteria 등이 어느 단계에서 필요한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수많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Part 4 - 커리어패스 그리기**
단순히 이직과 취업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든다기 보다는, 내 커리어패스의 근간을 잡는다는 컨셉으로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각종 문서들 - 제가 주로 쓰는 양식으로 PRD, Information Architecture, Service Flow, Job Story/User Story/Acceptance Criteria, 노션 운영 보드, WBS 문서 샘플을 공개하였고, 제 개인 포트폴리오 샘플을 강의에 포함하였습니다. (개인 크리에이티브가 있다보니 포폴은 문서로는 공개가 안되었습니다.)
제가 요새 개인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쓰는 에세이들도 그 일환인데요, 서비스 기획,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시리즈도 소홀히 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아티클이 나오는 시간은 좀 분산이 될 것 같아요.
서비스 기획 콘텐츠 이외의 에세이에 큰 관심이 없으시다면 프로덕트 매니저의 다이어리 매거진을 구독하셔서 불필요한 알림을 받지 않으시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에세이도 재미있으시다면 함께 읽어주세요! ^^
또, 개인 오피셜을 오픈했습니다. 서비스기획 보다는 저의 개인 관심사가 많이 올라갑니다. 월 1회 플레이리스트가 제공됩니다. 관심있으시면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