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아껴주지 못하는 시간들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지금의 유희하는 존재 ‘루덴스’를 있게 한 ‘아픔의 순간’이 누군가의 겨울에 조금이나마 ‘따뜻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6개월 동안(21.08 ~ 22.02) 유난히 길었던 마음속 겨울.
춥고 외로웠던 그곳에서 힘겨웠지만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며 묵묵히 버텨준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번아웃’
긴 나의 마음속 겨울을 보내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친구다. 그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스스로를 아껴주지 못하는 마음”
그때의 나를 돌아보니 나의 선택에 ‘존재에 대한 거절, 평가’가 아님였음에도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의 의견, 생각’에 스스로 ‘부정당했음’을 느끼고 나의 ‘감정 공간’에 부정적인 감정의 이름을 붙여 두고 다녔음을.
그렇게 난 번아웃의 시작을 막지 못한 채 출근하는 4개월 동안 혹독하게 집을 나서며, 전철을 타며 ‘오늘도 버텨달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하고, 회사에 도착했음에도 회사 주변을 배회하거나, 사무실 있는 6층 지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심호흡을 해야만 출근이 가능한 그 순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버텨냄’의 결과는 끝없는 무기력함과 마주할 수 있는 자존감의 밑바닥 그리고 내가 그리던 30대의 첫 순간과는 전혀 다른 ‘첫 퇴사’를 맞이하게 했다. 그 후 난 나만의 겨울에서 두 달이란 시간을 보내며 나의 몸과 마음이 얼어가도록 온전히 방치했다.
살아갈 소망이 없다는 게 무엇인지 나는 안다. 그 시간 나는 인생에서 가장 단순한 ‘먹고 자고 소비하고’의 삶을 보냈다. 먹으면서 처음으로 몸무게 70kg대를 찍어봤고, 침대 속에서 24시간 밤낮 상관없이 잠만 자기도 했으며 유튜브와 넷플릭스, 티빙을 벗 삼아 가지고 있던 퇴직금을 모두 소비하기도 했다.
‘의식’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을 보냈다.
그 당시 스스로 그런 삶을 보내고 있음에도 그런 나의 모습을 싫어했고, 미워했으며, 존중해주지 않았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물론 과거 내가 잘 지내고 있던 나의 모습과 비교하고, 내가 꿈꾸던 나의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과 비교하며 ‘오늘의 나’는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연 이치에 따라 겨울’이 지나 ‘봄’이 온다고
그런 나에게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봄’이 조용히 다가왔음을…
다음 이야기에서
‘봄’의 기적을 만들어 준 ‘소중한 친구’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