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천안사업장

나는 책 속으로 퇴근했다.

by 은선

고3 여름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 나와 몇몇 친구들은 삼성전자 천안사업장으로 향하는 관광버스를 탔다.
버스 밖에서는 교회 목사님이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TV에서 보던 군 입대 장면처럼, 나는 '취업 버스'를 탔다.
하지만 드라마 속처럼 감정이 북받치지는 않았다. 입대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출근하듯 떠나는 거였으니까.

천안이라는 곳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곳에 공장이 있다는 사실과 '천안 삼거리~' 하는 민요 정도뿐.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렸고, 창밖 풍경은 계속 똑같았다. 논과 밭, 산과 강이 지나갔고 나는 뜬눈으로 지난날을 생각했다.

일 년 전, 내가 고2였을 때 고3이던 오빠가 먼저 취업을 했다.
오빠는 경기도 어딘가의 공장으로 떠났고, 나는 오빠를 배웅하며 엉엉 울었다.
엄마와 떨어질 때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할머니도 오빠를 보내던 날엔 울었다.
그리고 일 년 뒤, 내가 떠나던 날엔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골목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며 눈물을 훔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차창 너머로 점점 멀어져 갔다.

항상 오빠만 편애하던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늘 무심해 보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노인정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방문을 열고 조용히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주셨다.
귤 하나, 바카스 한 병, 사탕 몇 개, 혹은 진미채까지도.

그렇게 나를 품어주고 치유해 주던 시골이 점점 멀어졌다.
이제는 스스로 나를 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돈을 벌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설레었고, 자유가 느껴졌다.
차창에 비친 내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클린룸 안에서 바람이 불었다.
천장과 바닥, 벽까지 하얗게 둘러싸인 공간.
바닥과 벽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24시간 365일 같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청정구역이었다.
그곳의 바람은 속눈썹으로, 방진복이 솜털을 스치는 느낌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알던 바람이 아니었다.
풀냄새도, 비 온 뒤의 흙냄새도 나지 않았다.
따뜻하게 데워주거나, 차갑게 아려오는 감각도 없었다.
인공적인 바람만이 부는 곳, 삼성전자 천안사업장 LCD사업부 3라인, 어셈블리 공정. 그곳에서 나는 일하게 되었다.

종잇장처럼 얇은 유리 패널이 라인을 따라 흘러갔다.
깨끗하게 씻기고, 뜨겁게 구워지고, 정밀하게 잘려 나갔다.
한 장 한 장, 꼼꼼히 검사되기도 했다.
하얀 방진복과 마스크, 장갑으로 무장한 작업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오직 ‘눈’만 드러낸 채, 유리 패널의 여정을 이끌었다.

공장은 정말 ‘돌고 또 도는’ 곳이었다.
기계가 고장 나거나 청소할 때를 제외하면 1년 내내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수천 명의 근무자들도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낮과 밤의 구분 없이 4조 3교대로.
다행히 24시간 제로 기록을 남겨야 했기에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교대근무도 힘들었지만, 사실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처음 접하는 사회생활은 낯설고 외로웠다.
내가 배정된 공정에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언니들이 세 명이나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순수한 관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여기서는 ‘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내 일 처리로 인해 다른 사람 업무가 밀리면, 바로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업무에 익숙해질수록 업무에 관한 트집이 줄자, 언니들은 인격모독적인 비아냥을 했다.
어느 날, 엄마가 골라준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출근했을 때였다.
“야, 옷이 그게 뭐냐? 할머니가 떠줬냐? 브랜드 옷 좀 사 입어.”
할머니 집에서 자란 나를 알고 있었기에, 창피해할 지점을 콕 집어 찔렀다.
차라리 진짜 뜨개질할 만큼 여유로운 할머니가 그 스웨터를 떠주셨다면 덜 서러웠을까?

팀 전체 회식이 있던 날.
모두가 둘러앉아 고기를 먹고 있었고 그날따라 고기가 유독 질겼다.
나는 주걱턱에 부정교합이라 고기를 씹는 데 오래 걸렸다.

그 순간, 언니가 한마디 던졌다.
“야, 너 되새김질하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나는 고기를 꿀꺽 삼켜버렸다.


그날 이후, 모욕과 무시를 당한 채 기숙사로 돌아오면 9층 방 창문을 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출근길에 버스에 뛰어들어 죽을까?'

'돌아가는 기계에 끼어 죽을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유서에는 그 언니 때문에 죽는 거라고 꼭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숱하게 타인으로 인해서 내 인생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살아온 어린 날이었는데,

죽음에서 안식을 찾아야 하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매일이 죽고 싶었지만 어쨌든 월급날까지는 살아있었다.

돈이주는 위안은 짧았지만 강했다.

불쌍한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여유를 줄 수 있었고, 옷을 한벌 씩 살 때마다 소유의 충만함을 느꼈다.


어느 날, 오빠가 군대에서 책 한 권을 보내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였다.
오빠가 군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출처가 어쨌건 나는 단숨에 그 책을 읽었고, 그 작가의 책들을 사서 모조리 읽었다.
책 속 세상은 나를 구원해 주었다.

일하는 8시간 동안, 퇴근 후 읽을 책을 생각하며 버텼다.

책 속으로 퇴근하는 기분이었다.

괴롭히던 언니도 자연스럽게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월급을 받으면 엄마에게 보내던 돈을 조금 줄이고, 적금을 들기 시작했다.
20대 여성을 위한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그저 살아야지’가 아닌, ‘더 잘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생겼다.
펀드를 가입했고, 더 많을 사고 책을 읽었다.

그 무렵, 나를 괴롭히던 언니는 다른 언니와의 갈등으로 조를 옮기게 되었고,
그 자리에 나와 동갑인 친구가 들어왔다.
우린 성향이 같았고,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미래를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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