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집과 머무는 마음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이 나를 덮어준다.
추울까 봐 하나 더, 또 하나 더 덮어준다.
이제는 숨 쉬기조차 어렵다.
이불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겹겹이 쌓였고, 나는 그 밑에 깔려 있다.
무력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엄마가 나를 흔든다.
이불더미 속에서 나를 끌어냈다.
눈을 뜨니 한밤중, 불은 훤하게 켜져 있었고
자식들 넷을 깨운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자 전축 옆에 서 있는 새아빠가 보였다.
새아빠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긴 소풍이 시작되었다.
신났다.
새아빠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았고, 엄마는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며칠씩 머물다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녔다.
처음 가본 모텔엔 욕조가 있었다.
하얗고 매끄러운 욕조는 막내의 똥기저귀를 갈아주고 엉덩이를 씻길 때 유난히 편하고 좋았다.
어떤 모텔에서는 커피포트가 없어서, 샤워기 물줄기로 컵라면을 익혀 먹었다.
생라면도, 익힌 라면도 아닌 맛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어느 날엔 통닭 한 마리를 사 왔는데 여섯 식구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새아빠는 우리를 배부르게 먹이겠다며 돼지머리를 사 왔다.
다행히 돼지가 눈은 감고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덜 들었다.
그 소풍은 제주도까지 이어졌다.
어디를 봐도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는 제주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목포의 항구만 보며 살아온 내게 제주의 바다는 찬란하게 빛났다.
이곳에서 살고 싶을 만큼 좋았다.
그렇게 계속될 것 같던 소풍은, 바다가 없는 전라남도의 한 시골에서 멈췄다.
새아빠 말로는 착한 할아버지가 공짜로 살라고 준 집이라고 했다.
방은 하나뿐인 초가집 같았고, 옆엔 양파를 보관하는 큰 냉장창고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배를 보관하는 냉장창고 옆 집으로 또 이사했다.
밤이면 세상의 벌레가 다 모이는 곳이었다.
새아빠는 드디어 여기에 터를 잡은 듯했다.
새아빠는 냉장창고를 관리했고, 엄마는 창고 앞에 있는 건강원에서 혼자 일했다.
건강원은 보통은 배, 양파, 포도를 즙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제일 많았다.
어떤 어르신들은 온갖 것을 들고 와 즙을 짜 달라했다.
움직이는 가마니 속엔 고양이, 개, 너구리도 있었다.
그 가마니는 벽에 걸려 방망이로 두들겨 팼고,
안이 조용해지면 꺼내어 뜨거운 물에 담가 털을 뽑았다.
남은 털은 토치로 태웠다.
오빠는 타버린 그것들을 양파망으로 벅벅 문질러 닦는 일을 맡았다.
다행이었다. 그 일이 내 몫이 아니어서.
어쨌든 그것들은 결국 커다란 솥으로 들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끓여졌고,
보자기에 싸여 탈수기에 들어가선 검은 물이 되어 나왔다.
새아빠는 새벽마다 오빠를 데리고 강에 가 가물치를 잡아왔다.
그 생선은 마치 커다란 구렁이를 토막 낸 것 같았지만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엄마가 즙을 내 팔기도 했다.
엄마와 새아빠는 전처럼 자주 싸우지 않았다.
아마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싸울 기운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내 학교생활도 좋아졌다.
친구도 생기고, 그림을 그려 상도 받았다.
구연동화 대회에도 나갔고, 리코더 합주도 해 보았다.
친구에게서 두 발자전거 타는 법도 배웠다.
커다란 배 저장창고 안에서 친구가 자전거 뒤를 밀어주다 손을 놓았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친구의 분홍색 바구니 달린 자전거는 금세 익숙하게 잘 탈 수 있게 됐다.
검은 먼지가 쌓인 창고 바닥에 자전거 바퀴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많이 그렸다.
오빠 방에는 배 포장 박스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그 박스는 인쇄 실수가 있어 디자인이 수정된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이 필요했다.
오빠는 그 스티커를 붙였고, 버려지는 뒷면 종이는 내 차지가 되었다.
미끄러운 앞면 말고, 연필이 써지는 뒷면 종이에 나는 그림을 원 없이 그릴 수 있었다.
천장까지 쌓인 박스만큼, 내 그림도 쌓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