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안 개와, 대문밖 고양이

마음은 언제나 지옥이었고, 나는 어설픈 악마였다.

by 은선


말 잘 듣는 아이는 조용하고 수수하다.

집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착한 아이여야만 했다.

대상이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랬다.

나는 ‘착함’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히, 비굴하게 굴었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틈은 교과서 귀퉁이의 작은 여백이었다.

그 여백에 그림을 그리며 작은 공상의 세계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세계가 엄마에게 발각되면, 그날은 매를 맞았다.

맞는 것보다 슬픈 건, 그것을 내 손으로 지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도화지는 숫자가 비치는 매끈한 달력 뒷장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달이 바뀌어야만 찾아오는 흰 눈처럼 하얀 공간.

그 도화지를 기다리는 날들은, 어릴 적 내게는 끝없는 가을 같았다.

엄마는 용돈을 주지 않았다.

가끔 몇백 원을 받아 불량식품을 샀지만,

그마저도 “몸에 안 좋다”며 맞았다.

나중엔 돈도 주지 않았다.

달콤한 것이 너무 먹고 싶었다.

어느 날, 청소 시간에 교실 바닥을 광내고 있었다.

반짝이는 바닥보다 더 빛났던 건, 틈새에 끼인 작은 별사탕 조각이었다.

먼지를 톡톡 털어내고 입에 넣을 때,

그 작고 낡은 단맛이 내 어두운 하루를 밝혀주는 별이 되었다.

옥상이 있는 집 옆엔 작은 슈퍼가 있었다.

그 집 딸은 방학이면 슈퍼 앞에 돗자리를 펴고

도화지에 물감을 칠했다.

그리고 싶은 것을 잔뜩 그려 도화지를 쌓아놓았다.

상상하는 모든 색을 만들어 그 도화지에 칠했다.

곁에는 달콤한 과자 봉지도 수북했다.

해 질 녘까지 그림을 그리던 슈퍼집 딸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 풍경은 나로선, 환상 속에서나, 다음 생에서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의 뱃속엔 단비의 동생이 자라고 있었다.

이제 내 아래로 동생이 둘.

사랑은 나눌수록 옅어졌다.

내 마음을 새아빠가 하나,

동생들이 하나씩

훔쳐가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었다.

공허해진 마음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다.

학교에서 미술실을 청소할 때면 색깔 찰흙을 하나씩 훔쳤다.

불안했고, 떨려서 찰흙을 쓰지도 못했지만,

무언가 온전히 내 것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길고양이 한 마리를 우리 집에 주었다.

나일론 끈으로 목덜미가 대충 묶인 꼴이었지만

그 고양이는 너무 예뻤다.

작고, 반짝이고,

보드라운 털과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귀에 꽂혔다.

고양이는 나만의 편이 되어주길, 내게 안겨주길,

나를 위로해 주길, 내 눈을 바라봐 주길 바랐다.

나는 그 고양이를 집착하듯 사랑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그렇지 못했다.

하악질을 하고, 할퀴고, 밥도 먹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작은 세상은 지우개로 지워졌고,

입안의 단맛은 너무 짧았다.

그 무엇도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았다.

길들여지는 법을 떠올렸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그 유일한 방식.

공포와 복종.

나는 고양이를 옆집으로 끌고 갔다.

철창 너머에는 시커먼 개가 컹컹 짖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속삭였다.

“내 말 안 들으면 저 개한테 던져버릴 거야.”

나는 두려웠다.

고양이마저도 나를 거부할까 봐.

그 작고 연약한 생명이 내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아팠다.

고양이가 무서워하면, 나를 따를 줄 알았다.

하지만 고양이는 날 할퀴었다.

그 순간, 나는 폭발했다.

내가 당했던 외면과 무시,

사랑받고 싶었던 모든 갈망이

고양이에게로 쏟아졌다.

나는 줄을 잡아당겨 개 앞에 고양이를 내밀었다.

겁만 줄 생각이었다.

그 순간, 개가 철창 사이로 주둥이를 쑥 내밀어

고양이를 물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일론 끈은 끊어졌고,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만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달아났다.

마당에 끈을 묶어놓고,

“고양이가 도망쳤다”라고 거짓말했다.

다음 날, 엄마를 따라 놀러 간 옆집에서

그 집주인은 말했다.

“개가 너무 사나워서 어제도 고양이 한 마리를 물어 죽였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무언가를 개에게 던져 복종시키려 할까?

아니면 또다시 공포에 떨며 순종하는 고양이가 될까?

나는 피해자였고, 동시에 가해자였다.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며 살았다.

고양이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세상에 뿌린 첫 번째 죄였고,

그 죄는 내 안에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내 마음은 언제나 지옥이었고, 나는 어설픈 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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