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이 있는 집

by 은선


밥상 위에는 조기, 갈치, 병어 같은 생선들이 자주 올랐다. 선장이었던 새아빠의 고깃배가 만선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언덕 중턱에 있던 무화과나무집에서 언덕 아래에 있는 옥상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집은 방이 두 개나 있었고, 큰 거실과 집 안에 화장실도 있었다. 그것도 변기가 있는! 새집에는 엄마가 고른 연핑크 꽃무늬 조각 가구들이 들어섰다. 침대와 장롱, 소파까지 세트였다. 새집엔 새로운 식구도 들어왔다. 새아빠의 배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청년 두 명, 키 크고 마른 ‘야야’, 단단한 체격의 ‘데니’. 그 둘은 막 돌이 지난 단비보다도 한국말이 서툴렀다.

거실에는 커다란 전축이 놓였다. 엄마는 새아빠가 고기잡이 나간 날이면 전축에서 김수희의 '애모'를 틀고 빨래를 개곤 했다. 꽃무늬 앞치마를 입고 설거지하던 뒷모습, 아침마다 창문을 활짝 열며 상쾌한 공기를 들이던 엄마. 토요일 밤이면 전축에 LP판을 올려 '죠스',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틀어주던 엄마였다.

새아빠는 나와 오빠에게 과외를 시켰고, 피아노 학원도 보냈다. 고깃배가 바다로 나가면 긴 공백이 생겼고, 엄마와의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배가 쉬는 날이면 선원들이 집으로 몰려와 화투판이 벌어졌다. 방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고, 엄마는 음식 준비에 바빴다. 오빠는 담배 심부름을 하며 용돈을 받았고, 나는 박카스를 얻어마셨다. 매캐한 연기와 쌍욕이 가득한 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이 많을수록 마음이 편했다. 우리 가족만 있을 때면, 늘 부부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날은 집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새아빠는 혼자서 연신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시작되었다. 새아빠의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때리더니, 성에 안 찼는지 엄마가 고른 꽃무늬 식탁 의자를 들었다. 야야와 데니가 달려들어 말렸지만,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꽃무늬 식탁 의자가 엄마를 향해 날아갔고, 나는 두려움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오빠는 나에게 계단을 오르라 했고, 나는 컴컴한 계단을 더듬어 올라 장독대 뒤에 몸을 숨겼다. 우리는 죽은 돌처럼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다.

장독대 사이로 바람이 뱀처럼 비집고 들어와 살갗을 훑었다. 귀에는 부서지는 소리, 욕설, 아이 울음소리, 외국어 말소리가 들려오다 멈췄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자, 눈에는 밤하늘이 들어왔다. 별빛이 차갑고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다. 언젠가 오빠는 말해주었다. 별똥별은 그냥 큰 돌덩어리가 우주에서 떨어지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 소원은 그 돌덩어리가 우리 집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적막이 계속되자 우리의 마음도 고요해졌다. 용기를 낸 오빠가 담벼락 아래 창문들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함께 고개를 내밀었다. 이 집은 특이하게 옥상이 대문 위에 있었다. 대문 옥상에서는 집 안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열린 커튼 사이로 넓은 거실이 보였다. 살림살이는 엉망이 되어 있었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큰방 창문 안, 환하게 켜진 형광등 아래 침대 위에 두 사람이 보였다. 새아빠와 단비였다. 잠에 든 그들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해야 했다. ‘엄마는 괜찮을까?’ ‘이제 내려가도 될까?’ 하지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달랐다.

‘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나였으면 좋겠다.’

새아빠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지만, 더 커진 건 살고 싶다는 본능이었다. 엄마를 때리는 사람이라면, 나도 때릴 수 있다고 믿었다. 어린 내가 맞게 된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다. 말 잘 듣고, 돈 들지 않고, 눈치 빠르고, 비위도 맞출 줄 아는 아이. 귀엽고 착한 딸.

나는 진짜 딸인 것처럼 행동했다. 무릎 위에 앉았고, 웃었고, "아빠"라고 불렀다. 그래서 새아빠는 엄마가 미워 엄마를 때리고, 오빠가 얄미워 오빠를 차별해도, 나만큼은 때리지 않았다. 차별하지 않았다.

나는 폭력과 차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른 핏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이쁨 받으려 애썼지만, 본능은 자기 피를 좇았다.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비겁한 욕망이, 미움조차 지워버리게 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딸’을 포기했다.


글을 쓸수록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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