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저 집 - 두 번째 이야기
행복한 일기장 속에 나는 없었다. 진짜 내 일기는 마음속 뒤편에 구겨서 넣어 두었다.
가족끼리 갔던 긴 소풍이 사실은 '도망'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의 소풍은 밖이 아닌 모텔 안을 전전했기 때문이고, 나와 오빠는 처음 보는 할머니 집이나 이모 집에 맡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와 오빠는 말 그대로 얹혀사는 신세가 돼서 눈칫밥을 먹었다. 어른들은 다른 얘기는 안 해도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말해주었다. "IMF가 터져서 부도가 났다." 'IMF'도 '부도'라는 뜻도 모르지만 "상처가 터져 덧났다"라고 이해를 해도 얼추 상황이 맞는 것 같았다. 나와 오빠는 어디에 맡겨지든 상처에서 나온 고름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맡겨지는 기간은 짧았고, 새아빠가 전라남도에 정착했을 때 우리도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객식구로 눈칫밥 먹는 것보다는 그래도 엄마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에 안도했다.
전라도에서 첫 집은 양파 저장창고 옆집이었는데, 정착 생활을 하니 새아빠는 다시 술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엄마를 팼다. 그럴 때마다 가까이 살던 집주인 삼촌이 와서 새아빠를 말렸다. 매 맞는 엄마를 구하고, 두려움에서 나를 구원해 주었다. 삼촌이 너무 좋았다. 나와 늘 몸으로 놀아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물론 제일 좋은 건 새아빠의 폭력을 저지해 준 것이었다. 삼촌을 믿고 의지했다. 어느 날 삼촌은 자신을 믿으라며 내가 눈을 감고 앞으로 팔 벌려 넘어지면 뒤에서 잡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삼촌을 믿었고 그렇게 했다. 정말 내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나를 뒤에서 붙잡아 주던 삼촌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쯤 되었을까...? 삼촌이 나를 붙잡는 손이 조금은 불편해졌다. 뒤에서 날 껴안아 주던 손바닥이 계속 나의 가슴에 있었으니까.
아직 5학년밖에 되지 않아 몸에 변화가 없던 나였지만 한순간 불쾌함과 배신감이 들었다. 삼촌을 어쩌면 내 아빠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를 안아주던 감촉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그날 이후 나는 삼촌을 멀리하게 되었다. 의지할 대상을 잘못 고르는 것 같았다.
시골 학교에 전학생이 오면 모두가 좋아해 주었다. 소위 잘 나가는 무리의 여자애들이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를 그 무리에 끼워주었다. 나는 그림도 잘 그려서 상도 받고, 리코더도 잘 불러서 그들과 합주회도 나갔다.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그 느낌, 그 속에서 인정받는 느낌으로 살 수 있었다. 어느 날 반에서 왕따이던 남자아이가 운동장 구석에 놀고 있었는데 우리 무리와 시비가 붙었었나 보다. 여자애들이 모여서 남자아이를 밀쳤다. 힘없이 쓰러진 남자아이가 흙바닥에 붙었다. 그 모습을 본 애들이 남자아이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일었다. 그때 내 눈은 엄마가 새아빠에게 발로 차이고, 주먹으로 맞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두려웠다. 이곳도 내가 소속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폭력 앞에선 움직일 수도 없는 나는 어디에서나 도사리고 있는 폭력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학교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었는데 내 글이 가능성이 있어 보였나 보다. 교감선생님께서 직접 나를 불러 칭찬을 해주고 내가 쓴 글을 고쳐주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가 쓴 글이 맞지만, 내가 쓴 글이 아니기도 했다. 주인이 모호한 그 글은 학교 밖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도 상을 타게 됐다. 교감선생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바다로 놀러도 가주었다. 갑작스러운 바다 나들이에 옷이 젖어 몸에 달라붙은 나와 친구들이 해 질 녘까지 놀고 나서야 우리는 집에 갔다. 나를 예뻐해 주고 칭찬해 주고 상도 타게 해 주던 교감선생님의 바다 나들이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낯설고 이상했다. 집에 와서 상장을 찢었다. 그 상을 받은 아이는 내가 아니었다.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하는 마음은 그렇게 종이처럼 찢어졌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멀다. 나의 걸음으로 빨라도 40분은 걸어야 했다. 걸어가다 보면 승용차들이 나를 앞서다 멈추는 일이 많았다. "태워줄까?" 하지만 난 절대 타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 차에 타지 않는 건 초등학교 5학년이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자전거라면 어떨까? 그게 동네 아는 아저씨였다면? 유난히 다리가 아팠던 그날, 집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었다. 자전거가 내 앞을 지나가다 멈췄다. 동네에서 마주치던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내 이름은 모르지만 내가 누군지 안다며 자전거를 태워주기로 했다. 멍청했던 나는 착한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뒷자리에 앉았다. 아저씨는 학교생활이 어떠냐 물었다. 엄마 아빠의 안부도 물었다. 내가 몇 학년이냐 물었고,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남자친구와 키스를 해봤냐는 질문에 순간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아무 말이 없자 내 몸의 신체 변화가 어떤 게 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내 뇌는 얼음처럼 굳었지만 내 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전거에서 폴짝 뛰어내려 가까운 골목으로 달려가게 해 주었다.
난 초등학교 5학년인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내가 원했던 건 아빠처럼 다정하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래서 내 아빠 정도의 나이 또래 아저씨들을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아빠 같은 남자를 원하게 될 거라고, 또 그런 남자를 믿게 될 거라고. 하지만 그 믿음은 늘 나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게 아빠가 없는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처음으로 쓰고 있는 글이라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읽어 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이게 맞나? 이런 내용까지 써도 되는 건가?'싶지만 그냥 써보렵니다.
내가 뭐라고 ㅎㅎ 어디까지 가게 되나 저도 궁금합니다.